16종 제철 생선의 모든 것 담아

‘치맥(치킨과 맥주)’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로 노가리를 내세운 호프집이 늘었다. 가벼운 주머니 걱정 없이 삼삼오오 맥주를 마시며 노가리(수다)를 까는 맛이 있어서일까. 책을 읽고나니 명태에게 미안해진다. 노가리는 1년 정도 자란 작은 명태로 아기태, 애태라고 불린다. 농담의 ‘농’자에 우리말 접미사 가리가 붙어 ‘노가리’가 됐다고 한다. 저자는 “명태 자원이 감소해 인공 종묘 생산을 위한 알을 받아낼 어미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요즘에는 잡아서는 아니 될 일”이라고 걱정한다.

덩치는 작지만 책 제목으로 뽑힌 멸치를 만나 보자. 그 작은 대가리 속에 블랙박스가 들었다니 무슨 소리일까 궁금해진다. 블랙박스는 멸치 귀 속에 들어 있는 이석(耳石)을 말한다. 이석은 칼슘과 단백질로 이루어진 뼈 같은 물체로 몸의 균형을 감지하는 평형기관이다. 그 작은 이석에 일일 성장선이 기록돼 있어 몇 년 며칠에 태어나 어떻게 살아왔는지 살펴볼 수 있다고 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를 몸소 실현하며 살아온 멸치가 요즘 힘들단다. 멸치는 떼를 지어 다니며 포식자에게 무리의 일부만 먹히는 방식으로 전체 무리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인간은 그물로 한꺼번에 멸치 떼를 잡아버리니 진퇴양난에 빠진 셈.
저자는 물고기의 억울한 사정도 풀어준다.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1758∼1816)은 “참홍어 암컷이 낚싯바늘을 물면 수컷이 달려들어 교미를 하다가 다 같이 끌려온다. 암컷은 먹이 때문에 죽고 수컷은 색을 밝히다 죽는 셈이니 이는 음을 탐하는 자에게 본보기가 될 만하다”며 홍어를 준엄하게 꾸짖었다. 요즘 사람도 ‘홍어 거시기’를 운운하니 그 음란의 불명예를 벗기 어려웠다. 저자는 홍어가 철저한 일부일처주의자라고 반박한다. 죽어가는 암놈과 수놈의 마지막 정사도 아름답고 철저한 섹스의 미학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홍어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책을 읽으면 생선 비린내가 난다. 막상 책에 코를 대면 종이 냄새만 나는데 글을 읽고 사진만 보면 다시 비린내가 진동한다. 책 읽은 보람을 느끼려면 식탁 위에 오른 생선을 고맙게 먹어야겠다. 생선뼈를 바를 때면 귀찮아서 대충 발라 먹곤 했는데, 기꺼이 한 몸을 내어준 물고기에게 감사하며 꼼꼼히 먹어야겠다.
책을 각 가정의 식탁 위에 두길 권한다. 요즘 몸에 좋은 생선을 먹지 않는 어린이가 많다는데, 억지로 생선을 아이 입에 들이밀지 말고 재밌는 생선 이야기로 유혹하면 어떨까.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