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와 그의 시대’ 연재를 마치며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입력 2013-09-13 03:00수정 2014-08-26 16:3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허문명 기자가 쓰는 ‘김지하와 그의 시대’]<111·끝>영웅들
석방 후 김지하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선 감옥보다 더한 고행(苦行)의 시작이었습니다. 누구보다 혹독한 감옥생활을 했지만 김지하는 초인적 의지로 버텨냅니다. 그러나 그는 바깥세상이 또 다른 감옥이라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됩니다.

그는 출옥 직후 숱한 지인들과 후배들로부터 “데모대 선두에 서 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그때마다 “이제 정치가 아닌 다른 일을 찾고 있다. 더이상 데모 안 한다”고 거절했습니다. 변절, 배신, 반동이라는 비난에서부터 ‘전열을 흩뜨리는 자’ ‘전선을 이탈한 자’라는 욕설이 쏟아졌습니다. 환경과 생명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서자 ‘생명교 교주(敎主)’라는 비아냥이 거셌습니다. 시인(詩人)의 여린 감수성을 가진 그의 마음에 세상의 욕설과 비난은 그대로 화살이 되어 꽂혔습니다.

결국 심한 환청과 환영에 시달립니다. 그는 출옥 후 20여 년 동안을 정신분열증으로 고통 받아 10여 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방 안에 멍하니 있다가 환영에 이끌려 집을 나가 행방불명되어 버리는 가장(家長)을 바라보는 아내와 자식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그가 오랜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 완치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입니다.

마음고생이 심한 생활 한가운데서도 그는 지식인으로서 나서서 말해야 할 때 과감하게 나섰습니다. 대학생들의 분신자살이 이어지던 91년 5월 조선일보에 실렸던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제목의 글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습니다. 시인은 이 글에서 “말끝마다 ‘민중’ ‘민중’ 하는 사람들”의 이중성을 강렬한 언어로 까발립니다. “민중을 지도하겠다는 사람들이 목숨을 경박하게 버리는 반민중적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으며 자기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 민중들을 선동하려 한다”고 말입니다.

관련기사
당시만 해도 도덕적 우위를 내세웠던 운동권을 향해 “맥도널드 햄버거를 즐기며 반미를 외치고 전사(戰士)를 자처하면서 반파쇼를 역설”하는 ‘철부지’ ‘유령’ ‘자살특공대’ ‘테러리즘’ ‘파시즘’이라 맹공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다시 그 글을 읽으니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의 결기가 느껴집니다. 글이 나간 직후 민족문화작가회의는 김지하 제명을 결정했고 그의 집에는 한 달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비난, 욕설, 협박 전화가 걸려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운동권으로부터 고립된 김지하는 그 일로 더 철저히 은둔합니다. 이후 ‘변절자’는 물론이요 ‘정신이상자’라는 말까지 들으며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지속했습니다.

그가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대선 때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용기 있는 결정”이라는 찬사도 많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운동권 일부에서는 그를 향해 ‘변절자’라는 낙인을 들이댔습니다.

이번에 되짚어본 김지하의 삶은 한 번도 민중에 대한 애정과 시대의 고통에서 피해간 적이 없습니다. 그는 타고난 문장가이며 혁명가이자 실천가였습니다. 민주화투쟁에 대한 대가로 권력이나 돈을 탐한 적도 없었습니다. 또 그는 민주주의 이념을 넘어 삶의 근본철학으로 동학 연구에 매진하는 지식인, 사상가의 길을 일관되게 걸어왔습니다. 이런 그에게 과연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이미 정치 세력화했으나 변질되어 버린 정치권 속 운동권들이 그를 향해 손가락질할 자격이 있을까요.

이번 연재는 올 1월 김 시인 인터뷰 기사를 계기로 그와 그의 시대를 더 상세히 알고 싶다는 독자들의 관심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기자는 그와 100시간 이상 대화를 나누며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의 삶은 ‘개인사’가 아닌 ‘시대사’ 그 자체 였습니다. 김 시인도 자신을 부각시키기보다 그 시대를 같이 살았던 많은 사람들을 부각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김지하와 그의 시대’로 정했던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당초 길어야 60회로 예상했던 원고는 100회를 훌쩍 넘기게 되었습니다.

4월 8일자부터 시작한 연재를 이제 마무리하면서 기자는 새삼 대한민국이 많은 영웅들을 갖고 있음을 깨닫고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취재하는 동안 기자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은 칭송을 들었던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고(故) 조영래 변호사(삽화 오른쪽)였습니다. 이른바 좌, 우 양쪽의 누구도 그를 비난하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한결같이 그의 인품과 헌신적 삶에 경의를 표했고 요절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생전에 고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기자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민주화의 거룩한 영웅은 조영래였다”고 여러 번 강조했던 김지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독자들은 또 대한민국의 영웅 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회상과 추억, 존경심을 강렬하게 표현해주셨습니다. 저는 60, 70년대를 관통했던 시대에 박 대통령, 육영수 여사야말로 최고의 영웅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영웅 중의 영웅은 역시 우리 민중이었습니다. 박정희 육영수 같은 지도자도 민중을 보살피고 어떤 점에선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고 김지하 조영래도 민중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민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우리 국민은 지난 시절, 때로는 유신 독재 치하에서도 정부가 경제를 잘 풀어가고 있으면 독재를 용인했습니다. 하지만 중앙정보부나 정치 모리배들이 도를 넘어 폭정을 하고 전횡을 할 때는 가차 없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중요한 역사적 전환기에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고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국민이었습니다. 우리 현대사는 영웅과 국민이 함께 끌어온 자랑스러운 승리의 역사였습니다. ‘이석기류(類)’가 우습게 볼 대한민국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민주화가 먼저냐 산업화가 먼저냐’ 논쟁은 한 측면만 강조한 역사관입니다. 산업화의 영웅도 우리의 영웅이고 민주화의 영웅도 우리의 영웅입니다. 그리고 민주화 산업화를 주도적으로 이뤄낸 것은 우리 민중, 대한민국의 국민입니다.

연재를 시작하며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써 나갈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념과 생각에 따라 호오(好惡)가 분명한 한국 사회에서 겁 없이 나섰다가 곤란을 겪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 기피해야 할 역사관’을 먼저 정했습니다. 첫째는 이념과 계급이 다르면 상대를 적으로 모는 ‘계급주의 역사관’이요, 둘째는 국가를 이끈 지도자만 영웅으로 보는 ‘지배자 역사관’입니다. 결국,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우리 민족이 처한 위치를 넓게 보고 국민을 중심에 놓는 역사관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한반도라는 거시적 민족 관점과 국제정세를 중요시해야 한다고도 생각했습니다.

한국사가 수능 필수로 정해진다고 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오랜 시간 좌우대결 속에 ‘역사교육 없는 교육’을 하며 긴 세월을 보냈습니다. 역사를 모르는 국민은 죽은 국민입니다. 역사가 바로 설 때 민족정기가 바로 서고 정치도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그래야 정치인들도 국민 앞에 더 겸허해질 것입니다.

그나저나 대한민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하고 선진국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하는데 왜 요즘엔 영웅이 눈에 띄지 않을까요? 시대가 격동적이지 않아서 그런가요?

그동안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angelhuh@donga.com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