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47>구름에 대하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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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대하여
―엄원태(1955∼)

이 가을엔 구름에 대해 써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구름에 대해서라면 누가 이미 그 불운한 가계의 내력과 독특한 취향까지 세세히 기록한 바 있고 심지어 선물상자라며 하늘수박을 제멋대로 담아본 이도 있다지만, 구름은 뭣보다도 오리무중에 암중모색이 본색이자 기질이다.

그래선지 구름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 물론 양떼구름이니 새털구름이니 뭉게구름이니 하는 종류는 조금 안다. 하지만 그것들 또한 다만 형상일 뿐 구름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도 안다.

내가 아는 것은 또 한 가지, 구름이 환절기를 틈타 내 무릎이며 발목, 손가락 마디에까지 들어왔다. 산이마에 걸린 안개구름 속을 오래 걸었던 탓인지, 구름께서 친히 내게 왕림하셨다.

구름은 역시 가을 하늘이 제격이다. 허공이 모태이자 고향이며 무덤이기 때문이다. 서리 내린 가을 하늘만큼 새파랗게 쓸쓸해지면, 누구나 구름의 심정을 약간은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더 구름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 보라!’ 중학생 시절, 헤르만 헤세의 소설 ‘페터 카멘친트’에서 이 구절을 읽으며 헤세에게 구름사랑 선손을 뺏긴 듯 속 쓰렸었다. 보들레르도 시집 ‘파리의 우울’ 첫 번째 시 ‘이방인’에서 노래했다. ‘나는 구름을 사랑하오. 지나가는 저 구름……저기…저기…저 찬란한 구름을!’ 구름을 사랑하는 시인이 많다. 구름은 시인들의 몽상을 자극하는데, 시인 엄원태는 구름의 몽상을 따라가지 않고, 구름의 본질과 기질을 캐고자 한다.

시인은 구름에 대해 써야겠다고 마음먹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구름이 뭔지 모르겠단다. ‘양떼구름이니 새털구름이니 뭉게구름이니’는 구름의 형상이지 본질이 아니란다. 구름이라는 건 뭘까? 시인은 자기가 구름에 대해 확실히 아는 한 가지를 이야기한다. ‘산이마에 걸린 안개구름 속을 오래 걸었던’, 산을 타면서 구름 속에 들어갔을 때의 그 감촉, 그 구름 맛! 어쨌거나 ‘구름은 역시 가을 하늘이 제격’이란다. 새파랗게 맑은 하늘은 구름이 생성과 소멸을 또렷하게 펼쳐 보이는 스크린이다. 시인은 중얼거린다. 구름, 너 역시 쓸쓸하구나. 허공에서 태어나 허공에서 죽는 구름!

구름을 본 지 오래됐다. 하늘을 봐야 구름도 본다. 하늘은 누워서 보는 게 제격. 방바닥에라도 누워 유리창을 올려다보자. 통유리창이라면 더 좋겠지만, 작은 유리창 한 장도 충분히 하늘을 담는다. 구름을 다시 보자! 구름, 매인 데 없는….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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