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관객 이해 도우려 너무 친절한 대사… 여백이 아쉬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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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나와 할아버지’ ★★★

할머니(왼쪽)가 손자의 차를 타고 시골집으로 향하는 장면. 뒤편에 선 ‘작가’는 입으로 내비게이션 소리를 낸다. 스토리P 제공
할머니(왼쪽)가 손자의 차를 타고 시골집으로 향하는 장면. 뒤편에 선 ‘작가’는 입으로 내비게이션 소리를 낸다. 스토리P 제공
“더 빠른 길, 더 나은 길만 고민하던 저는 별로인 것 같아요. 할아버지처럼 힘들게 부딪힌 길에 추억이 있고, 돌고 돌아갔던 길들 속에 사연이 있을 것 같고…. 빠르고 좋은 길은 내비게이션 안에만 있겠죠.”

11일 막을 올린 연극 ‘나와 할아버지’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 역의 배우가 객석을 바라보며 전하는 대사다. 그는 극 초반부 “저는 이 이야기의 원작 수필을 쓴 작가입니다”라고 관객에게 자신을 소개한다.

배우 4명이 화물운반용 손수레를 닮은 무대장치 하나만을 사용해 승용차 안, 시골 국밥집 등 여러 공간 상황을 설정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단출한 작품. 작가는 입으로 내비게이션 소리를 내고 국밥집 주인 등 여러 단역 인물을 도맡아 연기하며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무대 이곳저곳을 90분간 쉼 없이 오간다.

이야기는 무대만큼 단출하지 않다. 만나면 티격태격 타박만 주고받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느 날 할머니는 외손자 준희에게 “할아버지가 ‘어디 누구 좀 같이 찾으러 가자’고 하면 절대 도와주지 마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글감에 목말라하던 작가 준희는 할아버지와 동행에 나서고, 찾아간 목적지에서 “할머니가 쓰러지셨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는다.

할아버지가 찾으러 떠난 사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젊은 시절 전쟁 통에 안타깝게 이별한 첫사랑이다. 줄거리를 미리 보고 어렴풋이 기대했던 가슴 아린 노년의 러브스토리는 없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결국 누군가를 찾아내 재회하지만 그 노인이 평생 가슴에 묻어뒀던 첫사랑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할아버지 또한 그 확인에 애써 매달리지 않는다.

그 사람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어쨌든 죽기 전에 한번 찾아가 만나보려 해본 것으로 충분한 것.

그런데 이야기의 그런 여백이 눈에 보이는 만큼 가슴에 알싸하게 닿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해를 돕는다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작가가 자꾸 눈에 걸린다. “할머니 돌아가시는 마당에 다른 여자 찾으러 다니신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엄마의 한숨 소리가 사람들이 없을 때면 계속 들려왔죠.”

상황을 직접 연기로 보여주는 편이 이해하기 낫지 않았을까 싶은 작가의 말들이 적지 않다. 뻔하지 않은 흐름과 여백을 자꾸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이기에 그 말들이 더 아쉽다. 민준호 연출은 “자신의 이야기를 의도대로 전달하기 위해 애쓰다가 오히려 방해하게 되는 작가의 모습에서도 하나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용 진선규 홍우진 정선아 이석 등 출연. 8월 4일까지 서울 동숭동 정보소극장. 2만5000원. 02-744-4331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나와 할아버지#관객의 이해#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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