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교육이 궁금하면 존 로크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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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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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수석논설위원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졸업과 입학 시즌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초중고교와 대학을 합해 200만 명이 교문을 나서 상급 학교에 진학하거나 사회로 진출한다. 학부모들이 가장 가슴 졸이는 대학입시에서는 학생 대부분이 좌절한다. 올해 소위 SKY 대학(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입학정원은 모두 1만400여 명이었다. 지난해 11월 수능에 응시원서를 낸 66만8000명 가운데 불과 1.5%만이 명문대 진학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SKY 대학에 자녀를 보낸 소수의 학부모들은 잠시 안도하지만 4년 뒤에는 취업이라는 더 큰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대학과 관련된 각종 통계를 공개하는 ‘대학 알리미’ 사이트에는 서울대 졸업생의 지난해 취업률이 61%, 고려대는 66.6%, 연세대는 65.2%로 나와 있다. SKY 대학 졸업생 중에도 3분의 1은 취업에 실패한다는 얘기다. 졸업 후 바로 실업자가 된다면 명문대 진학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SKY 대학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90% 이상 학부모들에게는 이조차 ‘배부른 소리’로 들릴 것이다.

자녀 교육은 지난한 과정이다. 한국의 기성세대들은 자식의 취업 후에도 결혼과 육아, 자립까지 책임을 떠맡으려고 한다. 언제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끝이 보이질 않는다. 뚜렷한 답도 없다. 확실한 길이라고 판단해 자식에게 강요한 진로가 잘못된 선택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행복한 삶은 이렇게 사는 것이라고 선뜻 자식에게 권하기도 어렵다. 교육 문제는 선거 때마다 소리만 요란할 뿐 한 번도 속 시원하게 해결된 적이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정부도, 국민도 미궁 속에 빠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영국의 정치 사상가 존 로크(1632∼1704)가 집필한 ‘교육론’은 정치 쪽에서 저명한 인물이 교육에 대해 쓴 책이어서 흥미로웠다. 로크는 네덜란드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영국 왕 제임스 2세의 전제정치를 축출하는 데 참여했다. 1688년 이뤄진 이른바 명예혁명에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인물이다. 로크는 정부의 권력이 국민에게 위임받은 것임을 강조하면서 “권력자가 폭압 정치를 할 때는 국민이 언제든 쫓아내고 새 정부를 조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생명 자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로크의 사상은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독립선언서 앞부분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프랑스 혁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로크에 힘입은 바 크다. 그는 시대를 크게 앞서간 진보적 사상가였다.

로크는 교육의 우선순위를 요즘 한국 부모들과는 정반대로 매기고 있어 이채롭다. 한국 사회는 학습을 절대적으로 중시하지만 로크는 신체 정신 예절 학습의 순서로 내세우고 있다. 그는 자녀에게 먼저 건강한 신체를 갖추도록 해줘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어 아이들의 정신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방법, 그 다음에 예의범절을 다루고 있다. 읽기 쓰기 등 학습법은 맨 나중으로 미루고 있다.

건강한 체질을 위한 로크의 주문은 엄격하기 그지없다. 세계를 정복했던 로마인은 하루에 저녁식사 한 끼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체력이나 기력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전한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먹여 건강을 해치고 있다고 나무란다. 식사는 검소하게 하고 운동을 시키고 잠은 충분히 재우라고 조언한다.

신체가 갖춰진 이후에는 정신을 형성하고 단련시켜야 한다고 요구한다. 정신 형성은 아이들에게 욕망보다는 이성의 지시를 따르도록 만드는 일이며 평생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다음으로 훌륭한 예의범절은 아이가 가진 모든 장점을 빛나게 해주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호의를 얻게 해준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육의 우선순위를 제외하면 로크의 인식은 한국 부모들과 흡사한 면이 많다. 로크는 “교육에 드는 비용은 아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투자이기 때문에 아끼지 말라”고 주문한다. 또한 “당신이 자식 교육을 위해 지출하는 돈은 그만큼 물려줄 재산이 줄더라도 당신의 진정한 배려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우리 정치가들이 이런 말을 입에 올렸다가는 시민단체들이 당장 들고 일어날 일이다.

로크는 학부모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부모들은 자식이 어릴 때 비위를 맞춰 주고 응석을 받아 줘 아이의 타고난 본성을 버려 놓고 있다. 그러고는 나중에 자기가 독을 풀어 놓은 샘물의 맛이 쓰다고 불평한다.” “아이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쳐 준 적이 없으면서도 다른 사람 앞에서 무례하다고 나무란다. 부모는 아이의 잘못을 고쳐주기 위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은 자신의 창피를 감추기 위한 것이다.”

300여 년 전에 저술된 로크의 글은 교육의 본질이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당대의 진보적 인사였던 로크는 교육에서만큼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완고한 방식을 택하고 있다. 로크가 강조하듯이 사람을 키우는 교육에선 실수가 용인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로크와 한국식 교육 가운데 지금처럼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 세상이 급변하는 시대에는 지식 이전에 난관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강인한 신체와 정신, 예절을 강조하는 로크의 지혜 쪽에 더 공감이 간다. 기초체력과 적응력을 튼튼하게 만들어준 다음 거친 세상으로 내보내는 방식이다. 그러나 신체 정신 예절 같은 덕목은 학교보다는 가정교육에서 담당할 몫이 훨씬 크다. 박근혜 새 정부는 역대 정부처럼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정책이 나올지 모르지만 정부 역할만으로는 부족하다. 학부모들의 인식 전환과 세심한 노력이 더해져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교육#존 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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