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현대 한국화의 독보적 새 경지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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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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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이후 한국화단 1세대 대표주자 박노수 화백

대담한 구도, 선명한 선과 색채, 여백의 미를 살린 산수화를 개척한 박노수 화백. 동아일보DB
대담한 구도, 선명한 선과 색채, 여백의 미를 살린 산수화를 개척한 박노수 화백. 동아일보DB
한국 화단의 거목 남정 박노수(藍丁 朴魯壽) 화백이 25일 오후 1시 20분 서울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청전 이상범을 사사했고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도제식 ‘무릎제자’가 아닌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광복 이후 한국화 1세대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그는 1955년 국전에서 검은 한복의 여인을 그린 인물화 ‘선소운’으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수묵 채색화로 첫 대통령상을 수상한 28세 화가는 단숨에 화단의 스타가 됐다.

그가 화가로 입문한 시기는 한국화단이 일본풍을 벗어나 고유한 정체성을 모색하던 때였다. 다른 화가들이 먹과 추상에 머무를 때 그는 고전과 현대, 구상과 추상을 아우르면서 한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작가의 길은 외롭고 험하다는 의미의 ‘고예독왕(孤詣獨往)’이란 말을 평생 화두로 삼은 그는 전통을 답습하지 않고 수묵과 채색을 융합한 독자적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대담한 구도와 간결한 선묘, 먹과 투명한 채색, 여백이 조화를 이룬 격조 높은 산수화의 탄생이었다. 그가 마음으로 그린 자연에는 시적 정취가 스며 있다. 그는 “작품에서 여운이 뭔지, 기운생동과 운치 있는 세계가 뭔지를 터득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라고 했다.

그는 이화여대와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하고 국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 예술원 미술분과 회장 등을 지냈다. 예술원상(1987년), 은관문화훈장(1995년), 3·1문화상(2000년)을 수상했다. 2003년 뇌수종으로 쓰러진 뒤 붓을 놓았지만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리면서 그의 작품 세계가 재조명됐다. 제자인 한국화가 이철주 씨는 “전통적 수묵의 틀에서 탈피해 남종화의 문인화 정신과 북종화적 채색을 아우르며 현대 한국화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한 화가”라고 말했다.

고인은 지난해 작품과 가구, 소장품 등 500여 점을 종로구에 기증했다. 이를 토대로 1938년 지은 옥인동 자택(서울시 문화재 자료 1호)에 올해 구립 박노수미술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장신애 씨와 아들 찬규(KAIST 교수), 민규 씨(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와 진화(주부) 단교(〃) 가향(〃) 이선 씨(전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등 2남 4녀가 있다. 배우 이민정 씨는 고인의 외손녀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7호실. 발인은 27일 오전 9시, 장지는 경기 여주군 남한강공원묘원. 02-2227-7587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박노수#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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