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혜민 vs 혜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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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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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믿스님 트위터 프로필 사진.
혜믿스님 트위터 프로필 사진.
최근 ‘힐링’ 열풍의 선두에는 혜민 스님이 있다. 미국 하버드대 출신으로 젊고 잘생기기까지 한 ‘엄친아’ 스님은 트위터 팔로어가 46만2000명에 이르는 대표적인 SNS 스타다. 그가 트위터에 남긴 글을 모아 낸 에세이집은 지난해 140만 부가 넘게 팔렸다. 그는 어렵지 않은 일상의 언어로 상처받은 현대인의 마음을 치유한다. 예컨대 ‘모든 일이 자기 원하는 대로 쉽게 되면 노력하지 않게 되고 다른 사람 어려움도 모르게 됩니다. 어쩌면 지금 내가 겪는 어려움은 내 삶의 큰 가르침일지 모릅니다’ 같은 잠언들은 실패로 움츠린 어깨를 다독인다. 혜민 스님의 인기는 그만큼 치유와 위로를 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혜민 스님이 인기를 모으면서 SNS에는 그의 글을 패러디한 ‘짝퉁’ 스님들이 등장했다. ‘혜믿스님’이 대표적이다. 스님이라고는 하지만 종교인 같진 않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프로필은 케이블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사이비 승려로 분한 개그맨 신동엽의 사진이 올라와 있다.

원조만큼은 아니지만 혜믿 역시 현재 트위터 팔로어 2만6000명을 거느리고 있는 파워 트위터리언이다. 지난해 11월경 ‘혜밑스님’이라는 이름으로 트위터를 시작한 후 인기를 얻으면서 유사 페이스북 계정이 등장해 이름을 혜믿으로 바꿨을 정도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일찍 시작했다고 망하지 않았을 것 같나요?”(혜믿)

혜민 스님의 글이 ‘힐링’을 위한 것이었다면 혜믿의 글은 ‘타임킬링’용 유머에 가깝다. 그는 힐링을 내세운 서적들을 비꼬고,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긍정의 메시지에 딴죽을 건다. ‘‘아프니까 청춘’입니다. 그러나 그 아픈 청춘을 잘 버티고 이겨내면 ‘아플 수도 없는 마흔’입니다’나 ‘어떤 힘겨운 일이 있어도 버티면서 평생 자기개발을 열심히 하면서 살다 보면, 최고의 스펙을 묘비에 쓸 수 있을 거예요’ 식의 자포자기식 냉소에 누리꾼들은 열광한다.

사실 혜믿에 앞서 페이스북 스타인 ‘효봉스님’도 있었다. 그 역시 혜민 스님을 패러디하며 ‘해서 안 되면 마음이 아프지만 애초에 시도를 안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지 마세요. 꿈은 잘 때만 꾸세요’ 식의 글을 남겼다. 지난해 7월 등장해 단 일주일 활동했지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후 효봉의 페이스북 계정 운영자는 자신이 스님이 아닌 웹에디터라고 밝히며 운영을 중단했지만 현재 페이스북에 ‘좋아요’ 버튼을 누른 그의 팬은 1만7000명에 달한다.

지난해 인문서로서 이례적인 인기를 끌었던 책 ‘피로사회’에서 저자인 한병철 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 교수는 현대사회를 ‘성과사회’로 규정한다. 성과사회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긍정성 과잉의 사회이며, ‘존재하려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에 사로잡힌 현대인은 이 때문에 우울증에 빠진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어쩌면 혜믿과 효봉의 냉소는 피로사회에 사는 현대인 나름의 피로해소법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웃음 뒤에는 왠지 모를 헛헛함이 남는다. 그래서일까. 혜믿의 트위터 계정은 @humanghada(허망하다)이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혜민#혜믿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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