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달콤쌉싸름한 철학]착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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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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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착한 남자가 대세라면서요? 착한 남자, 좋아하세요? 착한 남자는 멍청한 남자가 아니라 심장 속 바보가 살아있는 순수한 남자입니다. 그러니 좋아할 수밖에요. 사실 나쁜 남자에게 끌릴 수 있겠으나 나쁜 남자와는 미래를 설계할 수 없겠고, 슬쩍 훔쳐보게 되는 짐승남에게 속을 보여줄 수는 없겠습니다.

드라마 ‘착한 남자’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여주인공의 기억상실증이었습니다. 거기서 기억상실증은 많은 드라마에서처럼 뜬금없이 등장하는 장치가 아니라, 드라마 전개에 필연적인 것이었으니까요. 아마도 작가는 때로는 상실되고 때로는 각색되어 이야기를 만드는 기억의 힘에 관심이 많았나 봅니다.

생각해보면 기억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에 대한 기억이지만 동일한 사태를 놓고 얼마나 다른 이야기들을 하는지요. 자기 기억만 옳다고 빡빡 우기면서 남의 기억이 틀렸다고 야단치는 사람을 봤습니다. 매번 남의 기억에까지 개입하려 하는 사람은 지배적이고 통제적입니다. 주눅 드는 것이 일상화된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사람과 어찌 살까요?

기억은 다를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악동처럼 장난치기를 좋아하니까요. 사람도 수틀리는데 기억이라고 수틀리지 말라는 법이 있나요? 그런데 또 그 기억을 통해서만 진실에 이르는 법이니 기억의 장난이야말로 그것은 인생,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기억은 지금 내가 하는 모든 판단과 행동에 개입하는 나의 대통령입니다.

기억하십니까? 낭떠러지에서 떨어져가며 소중한 물건을 찾아준 남자의 병실에 찾아와서는 누구에게 덤터기를 씌우려는 거냐고 되묻던 은기(문채원)를! 심장이 반응하는 호감을 그렇게밖에 수용하지 못하는 재벌의 딸에겐 누구도 믿지 말라고 가르친 재벌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많은 것을 가진 자가 그 많은 것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서는 경계심이 필수인 모양입니다. 정드는 일이 두려워 늘 경계하며 살아온 가진 자의 습성은 행운일까요, 불운일까요?

머리만 믿고 살았던 재벌의 딸은 기억상실증에 걸려서야 비로소 심장을 믿게 되고 심장이 기억하는 남자를 찾게 됩니다. “내 심장이 알고 있었어! 내 심장이 널 기억하고 있었어.”

우리는 무(無)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후천적이라고만은 설명할 수 없는 재능이, 성격이, 생김새가, 취향이, 식성이, 지향성이 있는 걸 보면 결코 빈손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와 함께 온 것, 우리가 심장 속에 담아온 그것을 알지 못하는 걸까요? 플라톤은 망각의 강을 건너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생으로 건너올 때 목마름을 참지 못하고 우리가 마신 그 강물 때문에 소중한 그것을 잊었다는 것입니다. 잊었으나 잃지 않은 그 심장의 기억 속에 우리의 존재 이유가 들어 있습니다.

영화 속 ‘늑대소년’이 알고 있는 것, 쓸데없는 것을 너무 많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하는 것, 기억상실증에 걸려서야 비로소 찾게 되는 그것, 그것은 심장 속에 있습니다. 심장 뛰는 사람을 만나고 심장 뛰는 일을 하라는 오래된 풍문은 가장 오래된 순수입니다. 심장은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무엇을 지향해도 좋은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이니까요. 심장은 머리보다 중요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마워도 고맙다 하지 못하고 미안해도 미안하다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덤터기를 쓸까봐 혹은 반대로 주눅이 들어서. 과거는 그렇게 쉴 새 없이 현재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그 과거를 풀어줄 수 있는 것이 심장의 기억입니다. 심장의 기억은 과거를 풀어줄 수 있고, 그럼으로써 미래를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심장에 귀 기울여 보시지요.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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