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남자이야기]<40>나이든 남자에게 필요한 다섯 가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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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안도감과 자부심을 느꼈다. 동료들의 존경을 받던 선배가 이혼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후였다. ‘그래. 이만하면 잘 사는 인생이지.’

하지만 안도감과 자부심은 느닷없는 돌팔매질 한 번에 유리창처럼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돌을 던진 이는 아내였다.

“이제 그만 살자. 난 이렇게 살다가 죽기 싫어. 더 늦기 전에 새 출발하고 싶어.”

남자는 아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따금 다투다가 “차라리 갈라서자”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화가 나서 해본 소리이겠거니 하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그런데 정색을 하고 이혼이라니. 어머니와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당신은 자기 체면밖에 모르잖아. 세상에서 제일 정의로운 척하면서, 늘 나만 나쁜 며느리 만들어 놨잖아. 내 마음이 어떤지는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지?”

남자의 분노가 솟구쳤다. 그나마 이 정도 사는 게 다 누구 덕분인데…. 부부간에 고성이 오갔고, 아내는 “합의가 안 되면 재판이라도 받겠다”는 말을 남겨놓고는 아이를 데리고 나가버렸다. 눈앞에 닥쳐온 인생의 가장 큰 실패에 남자는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중년부부의 이혼이 급증하고 있으며 이혼신청 10건 가운데 9건이 여성 쪽이라지만, 그런 것은 전부 남의 사정인 줄 알고 있었다.

생각할수록 분하고 억울하고 슬펐다. 이제껏 가족을 위해 희생해 왔는데 그것을 헤아려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내와 딸, 심지어는 부모님도…. 대단히 출세하지도 못한 남편이자 아빠 아들에게 모두들, 뭘 그렇게 바라는 게 많은 것인지.

“당신은 모든 게 핑곗거리지? 내 얘기 좀 들어달라고 하면 세상이 잘못됐다며 딴소리만 늘어놓고, 자기 어머니가 뭐라고 하면 나를 핑계로 내세우고는 뒤로 숨고…. 마누라만 나쁜 며느리 만들어 놓고 마음이 편했어?”

남자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문제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두려워 회피만 일삼아온 것이었다. 부모님이 잔치며 여행을 요구해올 때마다 아내 뒤로 숨어 나 몰라라 했고, 거절하느라 쩔쩔매는 아내 입장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얼마 전에 읽은 신문기사가 생각났다. ‘나이 들면서 필요한 5가지’라는 내용이었다. 남성의 경우 첫째 마누라, 둘째 아내, 셋째 애들 엄마, 넷째 집사람, 다섯째가 와이프라는 것이었다.

자기 체면만 생각했을 뿐, 식구들이 뭘 원하는지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본 적이 없었다. 남자는 회한과 함께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인지 파악해야 했다. 아내와의 화해는 그런 다음의 문제일 것 같았다.

한상복 작가
#남자#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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