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Hot 피플]혼외정사로 낙마한 퍼트레이어스 美 CIA국장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그의 실수보다 공로가 더 크기는 하지만…

퍼트레이어스 전 CIA국장은 전쟁터에서 수많은 적을 물리치고 췌장암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한 불사신이었지만 결국 ‘유혹’이란 적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동아일보DB
퍼트레이어스 전 CIA국장은 전쟁터에서 수많은 적을 물리치고 췌장암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한 불사신이었지만 결국 ‘유혹’이란 적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동아일보DB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61)은 미국에서 추앙받아 온 전쟁 영웅이다. 그는 군사 훈련 도중 가슴에 M16 총을 맞은 적도 있고 낙하 도중 골반을 다친 일도 있으며 췌장암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한 불사신이었다. 수많은 적을 거뜬히 물리쳤던 그는 결국 ‘유혹’이란 적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뉴욕타임스는 “그는 지금처럼 무너지기 전까지는 ‘무너질 줄 모르는 사람(indestructible man)’이었다”고 했다.

영웅을 무너뜨린 ‘유혹’이란 적(敵)

퍼트레이어스는 1952년 미국인 어머니와 네덜란드에서 이주한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도서관 사서였고 아버지는 해군이었다.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때 상선을 몰고 험난한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정착했다. 퍼트레이어스는 ‘네덜란드 뿌리’라는 자부심이 강했다. 올해 3월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네덜란드 군대를 도와준 공로를 인정받아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명예 기사작위를 받기도 했다. 159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가계 족보가 선물로 주어졌다.

퍼트레이어스는 고교 졸업 후 바로 육사에 진학했다. 운동도 잘했지만 우등생 클럽에 가입할 정도로 공부도 잘했다. 늘 자신감이 넘쳤고 도전정신이 충만했다. 육사 재학생 1000명 중 10명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의학교육 프로그램도 마쳤다. 당초 의학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가장 오르기 힘든 상아탑이기 때문에 도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후배들을 챙기기 좋아하던 그는 모교에서 2년 동안 국제학을 가르친 적도 있다.

그는 육사 졸업 후 프린스턴 우드로 윌슨 국제행정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의 주제는 베트남에서의 ‘반란 진압 전략’이다. 나중에 이를 기반으로 이라크 반란 진압 전략 매뉴얼을 만든다. 그가 내세운 전략의 핵심은 민심을 사는 것. 전쟁 중 민간인 안전을 최우선시하면서 반란군의 공격을 받고 있는 정부를 물심양면으로 도와 그 정부의 존립 정당성을 지키는 것이다. 그는 미군 병사들에게 이슬람의 풍속과 전통에 대해 수시로 교육했다. 현지인들이 “미국은 싫어도 퍼트레이어스는 좋다”라고 할 정도였다. 그 덕분에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고조됐던 국민의 이라크 전쟁과 추가 파병에 대한 반감을 누그러뜨렸고 패색이 짙어 가던 전세를 역전시켰다.

그는 행정부 수장인 부시 대통령뿐 아니라 의회 내 민주당 세력에도 협조하며 어떤 선거에도 투표하지 않는 등 초지일관 중립적 자세를 취했다. 이런 태도 덕분에 정권이 바뀐 후에도 아프가니스탄 사령관으로 발령받아 이라크 전략을 아프간 상황에 맞게 수정했고 이 공로로 해외 국가 정보를 총괄하는 CIA 국장까지 맡았다.

전세 역전시킨 타고난 전략가

그는 사람을 좋아했고 대인관계 능력이 뛰어났다. 특히 언론 노출을 꺼리지 않고 기자들이 새벽에 e메일로 질문을 해도 바로 답해 줘 인기가 높았다. 이라크에서 새로운 매뉴얼을 도입할 때도 추가 군사 파병과 예산이 필요했는데 언론의 지지로 성공할 수 있었다. 이번 스캔들에 대해서도 여론에서 동정론이 많은데 평소 기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 놓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군을 통솔하는 리더십도 수직적이라기보다 수평적이었다. 부하 직원들에게 직접 e메일을 보낼 정도로 위계질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지도자였다. 이번에 그와 스캔들을 일으킨 폴라 브로드웰이 뉴스위크에 밝힌 ‘퍼트레이어스의 12가지 삶의 원칙’ 중 3번은 이를 반영한다. ‘리더는 부하들에게 에너지를 주어야 한다. 숨 막히게 하면 안 된다’. 8번은 이렇게 나와 있다. ‘계급을 너무 따지지 마라. 설득이 아닌 위계질서에서 권위를 찾으려 한다면 사고방식이나 의사소통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도 남자다” 동정론 많아

현재 미국 내 여론은 퍼트레이어스에 대해 비난도 있지만 동정론도 많다. 데일리뉴스는 ‘그는 미국을 배신했다’라며 퍼트레이어스+배신(Betrayal)이란 뜻으로 ‘퍼트레이얼(Petrayal)’이란 말을 썼다. 워싱턴포스트도 “그가 이 나라를 망쳤다”라고 했다. 하지만 허핑턴포스트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미국의 권력자나 지도자의 불륜(존 케네디 대통령, 빌 클린턴 대통령, 존 에드워드 상원 의원, 마크 샌퍼드 주지사, 뉴트 깅리치 하원 의장,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지사)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라며 그를 두둔했다. 포린폴리시는 아예 대놓고 “불륜을 했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부분이 없다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왜 사임을 허락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라고 했다. 내셔널저널, NBC 등도 ‘(그가) 남긴 공로가 저지른 실수보다 몇 곱절 소중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과거 혼외정사로 홍역을 치른 깅리치 전 하원 의장은 NBC ‘투데이쇼’에 나와 “그는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 이번 일은 그의 위대한 경력에 비극적인 마지막 흠집이 됐지만 장차 나라를 위해 공직을 다시 맡길 바란다”라고 했다. 유명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인 마크 스턴도 “아름답고 지적인 여인이 ‘당신이란 사람, 왜 그렇게 멋진지 다시 한번 말해 줄래요’라고 속삭이는데 솔직히 싫다는 남자가 어디 있겠느냐”라고 주장했다. 프랑스 전문가 매슈 프레이저도 CNN에서 “프랑스 정치 지도자들이 혼외정사로 사임한다면 프랑스 의회는 텅텅 빌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든 지금 미국인들은 아직 ‘퍼트레이어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수석 고문이던 사디 오트만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행실이 바르고 공사 구분이 명확하고 매사에 신중했던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라며 울먹였다.

이수진 통·번역가

(참조 외신=CNN, 뉴스위크,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 타임, 뉴욕타임스, 허핑턴포스트, 내셔널저널, 더 뉴요커, 데일리메일, 이코노미스트, 주미 네덜란드대사관 홈페이지, biography.com, 포린폴리시)
#퍼트레이어스#CIA 국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