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박형준]노벨상 강국 일본의 교훈

  • Array
  • 입력 2012년 10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박형준 도쿄 특파원
박형준 도쿄 특파원
“올림픽에선 한국이 일본을 앞지를 수 있다. 우수 선수를 선발해 집중 훈련하면 된다. 하지만 노벨상은 차원이 다르다. 어지간해선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최근 도쿄(東京) 긴자(銀座)에서 일본 기자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나눈 이야기 가운데 한국과 일본의 ‘노벨상 격차’ 얘기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수긍이 가는 대목이었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는 19명. 한국은 1명(노벨 평화상·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기준을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등 자연과학 분야로 한정하면 16 대 0이다. 노벨상 수상자 기준으로 치면 일본은 세계 8위다. 자연과학으로 한정하면 세계 6위다. 일본은 노벨상 강국이다. 강해도 너무 강하다.

한국 정부가 당장 대책팀을 꾸려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면 상황이 달라질까. 일본 기자들의 지적대로 100년 이상 저변을 다져온 일본의 상황을 감안하면 당분간 힘들 것 같다.

일본인이 처음 노벨상을 받은 해는 1949년.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당시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원자핵 속의 새로운 입자인 ‘중간자’의 존재를 예측하는 이론을 세워 물리학상을 받았다. 일본은 노벨상 시상 첫해인 1901년 이미 세균학자인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郞)와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를 후보로 올렸다.

자연과학 분야에 대한 일본의 지원은 19세기 말 시작됐다. 1868년 메이지(明治) 유신으로 근대화의 기초를 마련한 일본은 부국강병책으로 기초과학 육성에 나섰다. 거점대학인 도쿄대가 1877년 창립됐고 기초과학의 대들보인 이화학(理化學)연구소도 1917년 문을 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뒤에도 ‘자원 없는 일본이 생존하려면 과학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막대한 연구개발(R&D) 투자가 이어졌다. 한국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따르면 2010년 일본의 총 연구개발비는 1788억 달러(약 199조 원)로 한국(43조8648억 원)의 4.5배에 해당한다.

노벨상 수상자를 6명이나 배출한 교토대도 ‘저변 다지기’에 충실했다. 도쿄대 출신 7명이 노벨상을 탔지만 문학상(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과 평화상(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을 제외한 자연과학 분야는 4명에 그친다. 교토대 수상자는 모두 자연과학 분야다.

고위관료 양성소 역할을 해온 도쿄대는 성과가 바로 드러나는 실용학문에 집중했지만 교토대는 ‘산업의 기초는 과학’이라는 생각으로 기초과학에 집중했다. 마쓰모토 히로시(松本紘) 교토대 총장은 최근 “기초과학 연구자들은 경쟁에 익숙하지 않고 연구 성과도 오래 기다려야 한다. 정부와 대학이 이를 지원할 재정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하나 짚어볼 게 있다. 2010년 각각 노벨 물리학상과 생리의학상 심사위원이었던 뵈리에 요한손 웁살라대 교수와 얀 안데르손 카롤린스카 의대 부총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노벨 과학상을 타려면) 자신의 연구에 재미를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무한정 빠지는 일본의 ‘오타쿠(마니아)’와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200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 씨도 자서전 ‘하면 된다’에서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 자기 일에 열의를 품고 자신만의 일을 가져라”고 조언했다.

요즘 말썽꾸러기 초등학교 1학년 딸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 비결에서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노벨상#일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