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30>재소자처(在所自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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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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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 있을 재 所: 바 소
自: 스스로 자 處: 곧 처

사람은 자신이 처해 있는 곳에 달려 있다는 환경결정론적 시각으로 진(秦)나라 재상 이사(李斯)가 한 말이다. 초(楚)나라에서 겨우 군(郡)의 하급 관리로서 세월만 축내고 있었던 그는 어느 날 쥐 두 마리를 보고 삶의 원리를 깨닫게 되었다. 변소에 있으면서 불결한 것만 먹는 쥐는 사람이나 개가 나타나자 깜짝 놀라 도망쳤으나, 곡식 창고 안에 있는 쥐는 쌓아 놓은 깨끗한 곡식을 먹으며 사람이나 개 따위는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이사는 한탄했다.

“사람이 어질다거나 못났다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이런 쥐와 같아서 자신이 처해 있는 곳에 달렸을 뿐이다.(人之賢不肖譬如鼠矣, 在所自處耳)”-사기 이사열전

이사의 탄식처럼 자신이 처한 환경의 차이에 따라 어떤 이는 현자(賢者)와 군자(君子)가 되는데 어떤 이는 하층의 우민(愚民)과 소인(小人)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세를 위해 모험을 감행하기로 결심한 그는 곧바로 秦나라 승상 여불위(呂不韋)를 찾아가 그의 사인(舍人), 즉 집사가 되었고, 다시 진시황에게 소개받아 궁궐의 모든 일을 총괄하는 장사(長史)의 자리에 오른다. 그는 진시황의 절대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공을 세워 객경(客卿)이 된다. 이 과정에서 기득권의 강력한 반발에 축객당할 처지에 몰린 그는 저 유명한 ‘태산불양토양 하해불택세류(泰山不讓土壤 河海不擇細流·태산은 흙을 사양하지 않고 큰 강과 바다는 물줄기를 가리지 않는다)’라는 인재 개방론을 들고나와 위기를 벗어나 진시황의 핵심 측근으로 거듭난다.

물론 과욕으로 인해 유서 위조에 가담하는 등 기회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그는 무려 22년 동안 진시황의 2인자로서 진시황을 도와 봉건제도를 폐지하고 군현제도를 실시하는 등 정치 경제 사상 문화 등 각 방면에 일대 개혁을 단행하고 시스템을 완성한 당대의 거물이었던 것이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한자#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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