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의사 기자의 메디 Talk Talk]‘다학제 협력진료’ 뿌리내리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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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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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닥터’보다 ‘베스트 팀’ 시스템 정착을

삼성서울병원 다학제 협력진료팀인 폐암팀이 한 환자에 대한 치료 방침을 결정하기 위해 회의를 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삼성서울병원 다학제 협력진료팀인 폐암팀이 한 환자에 대한 치료 방침을 결정하기 위해 회의를 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대학병원에서 암 환자를 진료할 때 ‘다학제 협력진료’란 말이 자주 나온다. 쉽게 말해 환자 1명을 여러 과의 의사가 진료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무늬만 다학제 협력진료일 때가 많다. 여러 과의 의사가 환자 1명을 보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국내 병원에서 다학제 협력진료를 제대로 하는 곳은 있을까. 왜 환자에게 좋은 제도가 정착되기 힘들까.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박근칠 교수(한국임상암학회 이사장)와 분당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이종석 교수(한국임상암학회 기획위원장)에게 자세히 들어봤다.

▽이진한 기자=다학제 협력진료는 호칭부터 다양하죠.

▽박 교수=네. 다학제 진료, 팀진료, 다학제 위원회라고 부릅니다. 아직 통일된 용어는 없어요. 환자에게는 협력진료 또는 협진이라고 말합니다. 암이나 심장병처럼 중증질환의 경우 여러 분야의 전문의가 2명 이상 모여서 환자의 진료 및 치료 방침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종합적인 접근을 하는 진일보한 진료 시스템입니다.

▽이 기자=환자는 가만히 있어도 의사들이 움직이니까 꽤 좋겠네요.

▽이 교수=네. 다학제 진료의 핵심은 병의 진단, 치료 및 재활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최선의 치료 방법을 찾아 적용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암 환자는 수술, 방사선, 항암약물 등 모든 치료 수단을 시의적절하게 이용해야 합니다. 지금은 각 분야가 전문화 및 세분되면서 빠르게 발전해 의사 혼자서 모든 분야를 꿰뚫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즉, 암을 진료하는 의사가 수술을 하고 방사선 치료나 항암약물 치료를 담당하기는 이제 불가능합니다.

▽이 기자=이제는 베스트 닥터보다 베스트 팀을 찾아야겠네요.

▽이 교수=암 환자를 위한 다학제 진료에서는 △수술을 먼저 해야 할지 △수술 전에 방사선 치료나 항암약물 치료를 먼저 해야 할지 △항암약물을 주된 치료법으로 해야 할지를 결정합니다. 결국 치료의 질을 증가시켜 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학제 협력진료를 이상적으로 하는 병원은 국내에 많지 않습니다.

▽박 교수=병원 내부의 문제와 제도의 걸림돌 때문입니다. 우선 병원 문제를 보면 자기에게 온 환자를 다른 과 의사에게 보내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환자를 빼앗긴다고 생각하거든요. 최선의 치료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내 환자’가 아니라 ‘우리 환자’라는 관점에서 모든 전문 의료진이 머리를 함께 맞대고 숙의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이 교수=의사가 다른 진료과 의사의 의견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국내의 병원 문화도 원인입니다. 그러다 보니 암 환자가 처음 진료 받은 과가 어디냐에 따라 치료의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경향도 있습니다.

▽박 교수=가령 유방의 멍울 때문에 유방암으로 판명됐다고 가정해 보죠. 일부 병원은 외과 의사에게 먼저 가면 수술하는 쪽으로 치료하지만, 내과로 가면 수술을 안 하는 쪽으로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환자가 왔을 때 처음부터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정보를 공유하면서 토론하면 무엇이 최선의 치료법인지 잘 판단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협진팀을 만들 때 누가 리더가 되느냐하는 것입니다. 국내에서는 대개 연장자나 목소리가 큰 사람이 주도합니다. 하지만 치료팀이 누구에게 끌려가는 식으로는 합리적 치료가 어렵습니다. 팀 리더는 소수의 의견도 귀담아 듣고, 최선의 치료법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됩니다. 선진국에서는 팀마다 공동진료 지침을 만들어 그 기준에 맞춰 움직입니다.

▽이 기자=심장동맥이 막히는 심근경색 환자의 경우 심장내과로 가면 막힌 혈관을 뚫는 스텐트 시술을 하는 경향이 많고 흉부외과로 가면 가슴을 여는 수술을 먼저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박근칠 교수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박근칠 교수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박 교수=이 밖에 많은 전문의가 협진을 하려면 장소나 시설을 제공해야 합니다. 방사선 필름을 함께 볼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합니다. 다들 외래 진료뿐만 아니라 병실이나 응급실 환자 회진, 수술 등의 일정으로 바쁜데 시간을 내서 정기적으로 함께 만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 기자=제도적인 문제도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요.

▽박 교수=같은 환자를 여러 명이 진료할 때 이 중 1명만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진료비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의사는 추가로 청구할 수 없으니 이 문제도 해결해야 됩니다. 환자에게는 가장 좋은 시스템이지만 현실적으로 하기 힘든 이유가 있습니다.

▽이 기자=그렇지만 다학제 팀을 운영하는 병원이 있지요. 환자 입장에선 병원을 어떻게 선택해야 좋을까요.

이종석 교수 분당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이종석 교수 분당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박 교수=우선 다학제팀이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겠죠. 암을 예로 들면 수술하는 과, 방사선 치료를 하는 과, 항암제를 투여하는 과 등 최소한 3개 진료과가 필요합니다.

▽이 교수=모든 병원에서 다학제 진료가 제대로 되지는 않는 현실입니다. 기존 방식의 진료로는 환자가 다양한 정보를 얻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환자는 담당 의사에게 현재의 치료법이 최선인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이 기자=다른 병원을 찾아가 또 다른 치료법을 확인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인 것 같습니다. 병원이 팀제를 운영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려면 정부가 3급 종합병원 기준을 정할 때 다학제 협력여부를 평가 기준에 넣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진한 의사·기자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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