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들의 사진사랑 이야기]<22>SK부회장단 김용흠 사장

동아닷컴 입력 2011-12-16 03:00수정 2011-12-1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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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갠 뒤 산 계곡을 따라 피어오르는 산안개. 아름답다 못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몽환적인 모습이 되어 인간의 눈을 현혹한다. 일본 규슈 유후인. 2011.김용흠 촬영
SK부회장단 김용흠 사장
《‘모범’이란 단어가 어울린다. 현실에 얌전히 순치해서가 아니다. 성실하게 자기의 삶을 살아서 모범적이다. 학창 시절 내내 선생님의 가르침을 노트에 가지런히 정리하던 학생. 호리호리한 외모와는 달리 해병대 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사나이.
초등학교 때부터 옆집에 살았던 여자친구와 대학 때까지 사귀면서도 모범적(?)으로 겨우 손만 잡아 본 숙맥 청년.
이런 스타일의 청년이 석유화학 회사에 입사해 34년 동안 오로지 한 분야에 매진하는 삶을 살았다. 그 결과 원유가공 생산물인 올레핀, 아로마틱, 합성수지, 합성고무 등 전 세계 화학제품 시장의 물류를 꿰뚫는 최고 트레이딩 전문가이자 사장이 될 수 있었다.
직장 생활 22년 만인 2000년 상무를 시작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사장까지 된 것도 그의 전문성에 따른 당연한 보상일지 모르겠다.
이는 SK㈜의 원로그룹인 부회장단에 속한 사장으로 재직 중인 김용흠 사장(59)에 관한 얘기다. 그가 사진을 배우고 있는 서울사진클럽 임향자 원장에게서 작년부터 그가 사진 취미에 흠뻑 빠졌다는 귀띔을 받고 서울 종로구 SK 사옥 근처에서 만났다.》

바쁜 와중에 사진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느 날 앨범을 뒤적거리다 1971년 고교 졸업 때 한 여학생과 찍은 사진을 발견했어요. 제 첫사랑 여학생과 찍은 사진이었어요. 그 사진을 마주하는 순간 40년 전 졸업식 때 모습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떠올랐어요. 초등학교 동창이고요. 바로 옆집에 살았어요. 부모님들끼리도 잘 아는 사이였죠. 중학교 때는 특별한 감정은 아니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이웃한 여고 남고에 다니면서 서로 묘한 감정이 싹텄죠. 어떻게 알았는지 고3 때는 생일 선물도 받았어요. 그 감정은 대학 때도 이어졌고 군대 가서는 그 여학생한테 미농지라는 얇은 습자지에 매일 일기식으로 편지를 썼어요. 그걸 한 달 두 달 모았다가 한 뭉치가 되면 그 친구에게 보내곤 했지요. 그랬던 여학생인데 어느 날부터 수십 년 동안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가 그 사진을 보고 어제 일처럼 다시 생각이 난 거죠. 사진이 그런 마력을 가지고 있더군요. 단 한 장뿐인 그 사진이 없었다면 그 여학생과의 인연의 기억이 다시 되살아날 수 있었을까요?

이런 계기로 제가 사진에 관심을 가지면서 지금 사진에 빠진 거죠. 제가 퇴임 후 제2의 인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세 가지 항목을 정했는데 그것은 사진 찍기와 남을 위한 봉사, 그리고 악기 다루기였습니다. 세 가지 항목 중에 사진을 넣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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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도 첫사랑을 아시나요.

“저는 고교 시절부터 결혼할 때까지 일기를 썼어요. 결혼할 때 일기장을 없애지 않아 아내가 그 친구랑 데이트하면서 손목도 잡고 했던 게 적혀있는 그 일기장을 본 거예요. 와이프가 내용을 다 알 뿐 아니라 이름도 알지요. 워낙 순수했던 사랑이라 괜찮아요.”

사진을 하시면서 어떤 생활의 변화가 생겼나요.

“예전에는 출장을 갈 때 카메라 없이 그냥 다녔어요. 올 8월 이명박 대통령 아프리카 순방길에 경제시찰단으로 동행했어요. 카메라를 필수품처럼 챙기게 되더군요. 현지에서도 틈이 나면 쉬지 않고 사진거리를 찾게돼요. 이런 식으로 출장, 휴가, 휴일에 틈을 내서 사진을 찍으러 다닌 횟수가 금년에만 20번 이상인 것 같아요. 설악산, 경남 통영, 제주도와 같은 국내는 물론이고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등 해외를 다니면서 그곳 풍광이나 사람들 사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맘에 드는 사진 한 장을 건질 때의 그 기분은 땅속에서 보석을 캐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사진기를 처음 접한 것은 언제인가요.

“예전부터 집에 카메라가 있었지만 제 카메라가 생긴 것은 사원 시절 프랑스 파리에 연수 갔을 때입니다. 당시 회사에서 지급하는 연수비를 아껴 남들은 선물을 샀지만 저는 이왕 왔으니 유럽의 문물을 배우자는 생각에 그 돈을 카메라에 투자했죠. 덕택에 비록 ‘인증샷’ 수준이지만 많은 여행 기억을 사진에 담아 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 사용하는 카메라 기종은….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자 싶어 전문가에게 어떤 카메라가 좋은지 물었어요. 여러 분이 캐논 ‘5DMarkП’를 추천하시더군요. 그래서 샀는데 화소수가 풍부하고 색상도 괜찮아요. 이제 보유한 렌즈도 5개로 늘어났습니다.”

피사체에 접근하는 나름의 방식은 무엇입니까.

“대상에 따라 접근 방법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풍경을 찍을 때는 다른 사람들처럼 앵글이 좋은 쪽부터 찍어요. 하지만 인물 사진의 경우 사람의 삶의 방식에 공감하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 현장에선 상대가 위화감을 갖지 않도록 눈빛을 교환하면서 다가서게 돼요. 그렇지만 그런 방법이 다 통하는 것은 아니더군요. 제가 가톨릭 신자라서 성당 안에서의 미사나 기도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경건하면서도 신성하게 표현해내고 싶었어요. 하지만 성당 안에서 사진을 찍게 되면 셔터 소리가 더 크게 울리는 것 같아요. 미사에 몰입해 있는 신자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사진을 찍고 싶으신가요.

“어떤 장르를 정하기보다는 기회가 닿는 대로 우선 추억 만들기에 나서고 싶어요. 첫사랑과의 추억이 일순 충격으로 다가왔듯이 자식들에게도 사진으로 조그만 감동을 주고 싶어요. 얼마 전 애들이 결혼했으니 손자가 생기지 않겠어요. 손자의 모습을 내가 힘이 있을 때까지 사진으로 기록해 보려 합니다. 한 20년쯤 지나 대학생이 된 손자들에게 내가 찍은 사진을 포토에세이식으로 보여주면 그 애들도 상당히 좋아할 것 같아요. 이건 비밀 계획인데 밝히고 말았네요. 또 하나는 은퇴 후 자유인이 되어 아내랑 같이 배낭을 메고 지구촌 안 가 본 곳을 한 군데씩 다니며 그곳의 문물, 풍경, 사람 사는 모습들을 기록해 볼 작정입니다.”

타인에게 사진을 권한다면 사진의 어떤 장점을 말해주고 싶나요.

“사진을 찍으러 이리저리 다니다 보면 운동량이 대단해요. 또 피사체에 주의를 집중하고 어느 한순간을 잡아내기 위해 신경을 쓰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죠. 잡생각이 나지 않아 골치 아플 때 최고입니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평소 딱딱한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게 감성적인 두뇌활동을 하게 해 좌우 뇌의 균형을 맞춰줍니다. 따라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활기를 되찾게 되죠. 개인적으로 살면서 사진 찍을 때만큼 즐거운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사진을 15년 정도 찍으면 혈관 나이가 1년(사람 나이 1∼5년) 젊어지고 엔도르핀, 도파민 같은 쾌락호르몬이 생성되면서 뇌를 활성화한다는 보고는 이미 나왔잖아요. 사진이 일상에 찌든 영혼을 신선하게 만든다는 점에선 시의 역할과 같다고 봅니다.”

해병대 생활을 서해 연평도와 백령도에서 하셨죠. 지난 연평도 사태를 보고 감회가 깊으셨겠습니다.

“워낙 오래전에 군 생활을 한 터라 지난번 포격을 당했을 때 연평도 모습을 보니 예전과 많이 달랐어요. 하지만 북한이 민간에 포격을 했다는 점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후배 장병들이 전사한 것도 안타깝고요. 사진 얘기를 하자면 군 생활 3년 동안 찍은 사진이라곤 육군에 행정교육 받으러 가서 찍은 사진 달랑 한 장입니다. 연평도 백령도 복무 때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는 것이 너무 아쉬워요. 그 당시 사진만 있었더라도 그때를 회상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당시만 해도 보안이다 뭐다 해서 사진을 못 찍게 했지만 찍을 사진기 자체가 없었던 시절이기도 해요.”

속된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상무로 승진한 이후 지금까지 거의 매년 승진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힘들었겠죠. ‘내가 전생에 덕을 많이 쌓아 하는 일이 잘되는가 보다’라고 했더니 아내가 하느님의 보살핌 덕이라고 정정을 하더군요. 저는 아내 덕에 가톨릭 신자가 되었거든요.(웃음) 제가 모교에서 특강을 했는데, 한 학생이 ‘입사해서 사장까지 오른 비결이 뭐냐’고 물어요. 사실 ‘나는 전생에 죄를 짓지 않은 것 같다. 여러분도 남을 위해서 많이 베풀어라. 연말이 되면 작은 돈이라도 기부를 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도와주려고 노력하고 베풀어라’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그 말을 학생들이 믿겠어요. 그래서 저는 덧붙이길 ‘더 성공한 CEO의 말도 귀담아들으라’고 말했지요. 남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은 자기희생이 뭔지 아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좋은 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성실히 노력하면 운도 따르는 법이지요. 그러면 사장만 되겠어요?”

운을 빼고는 비결이 없었나요.

“굳이 말한다면 정한 목표를 늘 초과 달성하는 편이었어요. 그 비결은 무역에 있었어요. 옛날에는 생산자가 물건을 생산해놓고 이걸 어떻게 팔까만 고민했잖아요. 물건값이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손해를 보면서 팔 수밖에 없었고요. 저는 2001년부터 석유화학 분야에서 우리 물건뿐 아니라 남의 나라 물건도 사고파는 트레이딩 개념을 도입했어요. 내가 미국에서 물건을 사서 아시아나 유럽에 팔았고 그쪽 물건을 미국에다 내다파는 식이죠. 이런 일은 주로 대기업 상사들이 주로 하는 일인데 그들이 다른 나라 생산자들의 정보를 우리에게 줄 리가 없잖아요. 직접 트레이딩 하면서 판매자 생산자 구매자 모두의 정보를 알 수 있게 된 거죠. 그런 정보가 쌓여 우리에게로 파워시프트(권력이동)가 이루어졌고 매출이 오르기 시작했죠.”

우리는 어쩌면 늘 정답을 알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정답대로 살지 못하는 게 인생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에게 맞는 답을 고르고 그 답대로 행하며 즐길 줄 안다.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하면서 20년 넘게 쳐오던 골프 횟수를 과감히 줄였다. 몸이 결리고 무리가 온다는 것을 알고서 새롭게 찾은 해답이 사진이기도 하다.

사진은 앞으로 김 사장의 인생에 여러 단초가 될 것이다. 먼저 그를 뒷바라지하느라 애쓴 아내와 함께 여행 갈 기회를 줄 것이다. 직장에 얽매였던 그를 자유롭게 해방시켜줄 촉매제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눈앞의 일일 뿐. 그의 꿈은 그보다 높은 나눔과 봉사를 향하고 있었다. 자신이 사회에서 받은 혜택을 사회에 돌려주기 위해서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업무와 관련된 일이든 침술이든 사진을 통한 재능 기부든 그는 ‘나눔’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 전경련에서 하는 인문학 강좌, 한국능률협회에서 하는 사서 강의를 듣는가 하면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서 구당 김남수 선생에게 침과 뜸을 배우느라 하루가 바쁘다. SK 부회장단의 일원으로 서민층 자활 지원,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SK미소금융재단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솔직히, 늘 정답대로 말만 하는 사람은 왠지 얄밉다. 하지만 정답대로 몸소 실천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 남지 않은 연말이 훈훈해지는 느낌이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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