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이 답한다]Q: 경제적 여건과 행복의 관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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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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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돈은 기름진 음식과 같아

《 많은 사람들은 행복의 가장 큰 조건으로 경제적 부를 생각한다. 경제 사정이 나쁘고 취업도 힘들어지면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국내총생산(GDP)이 낮아도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다며 경제적 조건과 행복이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행복을 연구하는 분야의 최신 연구 결과들은 행복과 경제적 여건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나.(nama***) 》
돈은 행복에 있어서 기름진 음식과 같다. 생존을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지방을 체내에 축적해야 하지만, 그 양이 과해지면 부작용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돈은 일정 수준까지는 행복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준다. 빈곤 상태에서의 돈은 의식주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절대적인 수단이다. 가난해도 행복할 수는 있지만, 빈곤 상태에서 돈은 분명 행복의 단비가 된다.

아프리카와 같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대륙은 그래서 국가별 행복 순위와 GDP 순위가 엇비슷하다. 아시아의 빈국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가 매우 행복하다는 일부 보도가 있었으나 학계에서 인정하는 정설은 아니다. 수많은 연구 자료에서 방글라데시는 세계 중하위권 수준의 행복 수치를 보인다.

하지만 한 국가 혹은 개인이 경제적 결핍 상태에서 벗어나면 돈은 전과 같은 강력한 ‘행복 약효’를 발휘하지 못한다. 한 국가의 1인당 GDP가 약 1만 달러 수준의 문턱을 넘으면 행복과 돈의 관계는 느슨해지기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돈과 행복 사이에 중요한 매개 요인들이 끼어드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유감이다. 즉 어느 정도의 경제 발전을 이룩하면 돈은 개인이 일상에서 누리는 자유를 증진시키고, 바로 이 늘어난 자유로움 때문에 행복이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경제 수준과 개인의 자유감이 동반 성장하지 못하는 문화나 국가의 행복 수준은 정체된다. 안타깝게도 한국과 일본은 이 같은 국가의 사례로 언급된다. 역으로 우리보다 경제적으로는 낙후됐지만 개인이 느끼는 일상의 제약이나 구속감이 상대적으로 적은 남미 국가들의 행복 수치는 한국이나 일본보다 높다.

최근 연구들은 지나치게 돈을 추구하는 삶(물질주의)은 행복의 독소가 될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돈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돈을 생각할수록 행복의 가장 중요한 토대인 사회적 관계를 과소평가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돈을 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돈은 혼자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자기충만감을 일으켜 행복의 뿌리가 되는 대인 영역에 치명적 손상을 준다. 행복의 수단에 불과한 돈을 과하게 추구하면서 오히려 행복으로부터 멀어지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갤럽이 최근 세계 134개국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가장 물질주의적 가치를 중시하는 국가 중 하나로 나타났다. 궁핍했던 과거의 기억 때문일 수 있지만 이제 한국은 경제 원조를 제공하는 국가다. 이 정도 경제 수준이면 행복의 수단으로서 돈의 역할은 급속히 감소한다는 사실을 최근의 심리학 연구들이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서은국 연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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