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의사 기자의 메디 Talk Talk]의약품 슈퍼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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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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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 약만 안전? 그건 착각” vs “예측불허 부작용 대비해야”
찬-권용진, 반-이광민

《의료계 현장에서는 검증되지 않거나 잘못 알려진 건강과 의학 정보가 넘친다.본보 의학전문기자가 의료계 최고 전문가를 만나 이런 문제를 짚어보고 대응 방안을 찾아 나선다. 대화체로 알기 쉽게 풀어나가는 ‘이진한 의사 기자의 메디톡톡’은 격주마다 소개한다.》
약국에서만 판매됐던 박카스 등 일반의약품이 의약외품으로 전환된 올 7월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슈퍼에 진열된 약품들. 정부는 진통제 등 가정 응급약도 슈퍼 판매용으로 분류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약국에서만 판매됐던 박카스 등 일반의약품이 의약외품으로 전환된 올 7월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슈퍼에 진열된 약품들. 정부는 진통제 등 가정 응급약도 슈퍼 판매용으로 분류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최근 몇 년 동안 일반 약품 부작용 신고가 크게 늘었다는 자료가 나오면서 가정 응급약 슈퍼 판매가 또 논란이 되고 있다. 일반 약을 슈퍼에서 팔면 부작용에 따른 사고가 늘 것이라는 주장과 지금의 부작용 보고가 과장됐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 있다.

일반 약 슈퍼판매를 위한 법안은 현재 국무회의를 통과한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의 부작용 보고에 더해 인터넷에서는 ‘슈퍼에서 약을 사먹으면 위험하다’는 등 근거 없는 소문이 퍼져 일부 소비자가 어리둥절해한다. 이에 권용진 서울대 의대 의료정책실 교수(이하 권), 이광민 대한약사회 정책이사(이하 이 이사)와 함께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일반 약 부작용과 슈퍼판매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대한약사회는 내부 사정으로 이 이사가 서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이진한 기자(이하 이)=추석 때 저녁 늦게 아이가 배가 아파서 응급약을 구하려 약국을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네 주위엔 약국이 없어서 결국 1339의 도움을 받아 시내 중심까지 가서야 겨우 약을 구했습니다. 평소엔 불편함이 없다가 이런 응급 상황을 겪으면 상비약 슈퍼 판매가 절실해집니다.

▽권=아이가 아파본 경험이 있는 부모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이죠.

▽이 이사=일부 심야시간에 불편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의약분업 이후에 약국만 열려 있어서는 국민 불편 해소에 한계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약사회에선 보건소 등을 이용한 공공진료센터 구축을 계속 주장하고 있습니다.

권용진 서울대의대 의료정책실 교수
권용진 서울대의대 의료정책실 교수
▽권=머리가 조금 아프거나 열이 조금 난다고 모두 병원에 갈 필요는 없습니다. 공공진료센터와 슈퍼판매는 별도의 논의 대상입니다. 가벼운 찰과상, 콧물, 기침 같은 간단한 증상에는 국민 스스로 약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현재에도 슈퍼나 마트에서 약을 팔고 있지 않습니까.

▽권=9월 초부터 박카스나 자양강장제는 판매하고 있지만 아직도 해열제 시럽이나 소화제 종합감기약 등 소위 간단한 응급약은 슈퍼에서 구입할 수 없습니다.

▽이=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 국정감사에서 2006년부터 올해 7월까지 부작용 보고가 가장 많은 상위 10개 일반약 중 슈퍼판매 대상으로 거론되는 진통제, 감기약 등 품목들의 보고 건수가 3958건에 이른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걱정이 많습니다.

▽이 이사=외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와 유사한 자료가 공개됐으며 의약품의 올바른 사용에 대해 알리고 있습니다. 의약품 사용에서 안전성 문제의 중요성을 뒷받침하는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이광민 대한약사회 정책이사
이광민 대한약사회 정책이사
▽권=최근 부작용 신고가 늘어난 것은 몇 년 전부터 식약청이 병의원과 약국에 대해 부작용 보고를 의무화했기 때문입니다. 부작용 자체가 늘어난 것이 아니고 신고 건수가 늘었다는 거죠. 그중에서 약국에서 신고한 부작용 건수는 0.01%에 불과합니다. 약국의 부작용 모니터링 기능은 거의 없다는 얘기죠.

▽이 이사=약국의 부작용 보고 건수가 매우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부작용 보고에 대한 동기 부여와 보고 양식 및 절차를 간소화한다면 약국의 참여도 점차 늘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한약사회도 부작용 보고에 약국 참여를 확대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권=그래도 두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첫째는 약사나 의사가 의약품 안전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 둘째는 약국에서만 약을 팔아야 안전이 보장된다고 보는 것은 착각이라는 점입니다.

▽이=하지만 요즘 일반의약품도 남용하면 부작용 우려가 있기 때문에 슈퍼 판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권=부작용 문제는 깊이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슈퍼판매 논의는 해열제나 종합감기약 두세 가지는 구입 연령과 판매 수량 제한이나 유통 안전이 보장된 슈퍼에서만 팔자는 것입니다.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법안도 모든 일반의약품을 모든 슈퍼에서 팔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발생하는 심각한 부작용은 의사에게 처방을 받고 설명을 들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예측 범위를 벗어난 부작용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사=맞습니다. 모든 의약품엔 예측이 불가능한 부작용이 존재합니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의사와 약사가 국가로부터 면허를 받은 것이죠.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의약분업을 실시한 측면이 있고, 약품처방조제지원시스템(DUR) 제도도 도입했습니다. 예측이 불가능한 부작용의 경우엔 피해자는 분명 존재하는데 이를 책임질 주체가 불분명합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적절한 대비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알려지지 않은 부작용의 경우 피해를 막기 위해 회수 및 관리 시스템을 가동해야 합니다.

▽권=대부분의 국민은 의약품 부작용이 의심되면 병의원으로 갑니다. 흔한 부작용으로 몸에 발진이 생긴다고 해도 그것이 약 때문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의사들 중에서도 경험이 많은 의사나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일입니다. 현재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약물 부작용 신고부터 회수, 배상까지 관리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은 좋은 생각입니다.

▽이=
이번에 슈퍼판매 관련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어떻게 되나요?

▽권=
약국과 슈퍼에서 판매할 수 있는 의약품을 다시 분류해야 하기 때문에 응급약이 슈퍼에서 팔릴 때까지 1년 이상의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이사=
일반의약품 슈퍼판매 여부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분업시대에 맞는 약사로서의 역할을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적극적인 DUR 참여와 복약지도 강화 등을 통해 의약품 사용에 따른 국민 건강의 위해요인들을 줄이고 약국의 기능을 재정립해 나갈 것입니다.

▽이=일반인들은 일반 약에 대한 부작용이나 약품의 안전은 약사나 의사가 지켜주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약품을 남용할 수도 있습니다. 부작용 같은 사고를 예방하려면 국민 스스로 건강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일반 약 포장지에 적혀 있는 중요한 부작용과 복용방법을 더 꼼꼼하게 읽어보는 습관만으로도 사고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이진한 의사 기자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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