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프리즘/권순활]‘중산층 키우기’ 가로막는 도그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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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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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활 논설위원
권순활 논설위원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1914년 1월 파격적 임금 인상 조치를 발표했다. 그는 하루 2달러였던 T-모델 조립라인 근로자 급여를 2.5배인 5달러로 올렸다. 재계에서는 “포드가 미쳤거나, 사회주의자이거나, 혹은 그 둘 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경제적 범죄행위’라고 혹평했다.

反부자 정서에 막힌 서비스 일자리

결과는 ‘근로자가 소비자이기도 하다’는 점에 눈을 뜬 포드의 승리였다. 소득이 늘어나자 직원들은 그림의 떡이었던 T-모델 자동차를 구입했다. ‘사치품의 대중화’는 거대한 신규 시장을 만들어냈다. 미국 빌 클린턴 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는 “포드는 미친 사람도, 사회주의자도 아닌 영리한 자본가였다”라고 촌평했다.

포드의 실험이 거둔 성공은 직원 급여를 비용으로만 볼 수 없는 측면을 일깨워준다. 다수 근로자의 소득이 늘어나 구매력이 커질수록 중산층 확대와 경제성장이 촉진된다. 반면 봉급생활자의 지갑이 얇아지면 소비위축과 경기침체가 가속화한다. 세계화와 정보화로 기업 경쟁력은 높아진 반면 소득격차 확대와 중산층 붕괴로 몸살을 앓는 나라가 많고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올 6월 한국의 취업자 수는 2475만 명으로 1년 전보다 47만 명 늘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초 기대를 뛰어넘는 5개월 연속 고용 개선은 이례적”이라며 반겼다. 최고의 복지인 일자리 증가는 낭보(朗報)지만 중산층을 살리거나 키우려면 일자리만으로는 미흡하다. 소득도 함께 늘어나야 제대로 의미를 살릴 수 있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봉급 인상률이 물가 상승률을 웃도는 것이 상식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최근 10여 년은 ‘그런 시절이 언제 있었느냐’고 느끼는 직장인이 많다. 중산층 축소와 소득 양극화는 경기를 위축시키고, 정치사회적으로는 선동주의자가 발호할 토양을 만든다.

맹목적 주주자본주의의 환상은 중산층 몰락을 부른 중요한 요인이었다. 직원의 실질임금은 제자리이거나 뒷걸음치는데 국내외 주주에게 돌아가는 배당만 급증하는 것은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 노동생산성을 무시한 과도한 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경계하면서도 근로소득의 상대적 파이를 키워 나갈 때다.

국제적 비교우위가 현저히 낮은 우리 서비스업은 성장 잠재력이 크고 신(新)중산층을 키울 수 있는 블루오션이다. 교육 의료 관광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은 괜찮은 국내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부(富)가 위에서 아래로 퍼지는 ‘낙수 효과’에 따른 내수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다. 이런 규제 완화를 두고 ‘부자만을 위한 정책’ 운운하며 계층 갈등을 부추기는 허구적 주장은 우리 자신과 자녀의 중산층 진입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도그마요, 자해(自害)다.

해외 투기자본보다는 재벌이 낫다

몇 년 전 해외 투기자본인 소버린과 칼 아이칸이 SK그룹과 KT&G의 경영권을 빼앗으려고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했다. 당시 정치권 사회단체 언론계 일각에서는 우리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문제 삼으며 외국 헤지펀드의 장단에 놀아났다. 만약 SK와 KT&G가 소버린과 아이칸에 넘어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단기간에 본전을 빼먹으려는 투기자본의 속성상 많은 직원이 쫓겨나고 기업 경쟁력도 추락했을 것이다. 최근 한국 대기업에 유난히 몰매를 가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그때와 ‘겹치기 출연’이 적지 않다.

대기업과 오너 일가의 몇몇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고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다만, 꽉 막힌 근본주의 시각으로 사안을 과장하거나 지나치게 감정이 묻은 비판이라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재벌의 일부 현실에는 나도 거부감이 크지만 그래도 국내 대기업이 잘되는 게 해외 투기자본이 설치도록 하는 것보다는 훨씬 폐해가 작고, 중산층 증가를 비롯해 다수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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