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프리즘/허승호]여전히 유효한 ‘권오규 부총리’의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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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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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얼마 전 기자의 컴퓨터에 보관된 잡동사니 문서를 정리하다 ‘가계발 금융위기 가능성 차단해야’라는 제목을 발견했다.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 눈길을 확 끌었고 얼른 열어 읽어봤다. 골자는 대충 아래와 같았다.

5년 전에 써 둔 칼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13개 경제연구소 대표들은 입을 모아 내년 한국경제를 위협할 최대의 복병으로 가계발 금융위기를 꼽았다.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해 가계도산이 일어나고 금융권도 부실대출로 허물어지면서 신용위기가 오는 시나리오를 걱정하는 것이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도 △가계부채 △저축은행 등 서민금융회사의 부실 △금융회사의 외화대출 증가 △중소기업 대출 급증 등을 금융시장의 4대 위험요인으로 거론했다.

가계부채를 걱정하는 것은 올해 부동산에 거품이 많이 끼었기 때문이다. 그 거품을 꺼뜨리는 과정에서 대출금리가 올라 이자 부담이 커지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가계들이 타격을 입고 금융위기의 방아쇠 역할을 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책임은 정부에 있다. 2003년 정권을 넘겨받아 신용카드 대란을 수습하느라 계속 돈을 풀었기 때문이다. 그전 정부도 1997년 외환위기를 넘기기 위해 돈을 풀다 카드대란을 맞았다.

정부는 금리인상과 대출총량규제 등 집값 안정을 위해 애쓰고 있다. 문제는 부동산 및 내수 침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것. 일본의 부동산 버블로 인한 ‘잃어버린 10년’을 연상케 하는 시나리오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금융권의 신용위기다. 저축은행 신협 새마을금고 등 서민금융기관은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면 금방 무너질 수 있다.

돈을 풀 수도, 죌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뾰족한 해법이 없다. 단기적으로는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돈 관리를 해야 한다. 감독 강화 등 정책 간 파인튜닝이 필요하다. 또 부동산 시장은 가능하면 내부의 수급 조절을 통해 안정시켜야 한다. 장기적이며 궁극적인 해결책은 부동산 시장에 쏠린 부동자금이 생산적 부문으로 움직이도록 길을 트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연착륙을 유도하고 기업투자도 활성화하는 것이다.”

권오규 씨가 부총리로 등장하는, 참여정부 시절 얘기다. 기자가 2006년 12월 논설위원으로 일할 당시 써둔 칼럼의 초고였다. 다른 시급한 주제부터 다루느라 컴퓨터에 남겨둔 채 잊고 지냈다. 그러나 5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내용은 여전히 유효했다. 기자에게 무슨 선견지명이나 혜안이 있어서가 아니다. 해묵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넘어온 것뿐이다.

외화부채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떨어뜨린 핵심요인이었다. 당시 정부가 나서 천방지축 달러를 끌어와 고비를 넘겼다. 저축은행 사태는 올 초에 드디어 터졌고 현재진행형이다.

가계부채는 3월 말 현재 801조 원 규모로 위 칼럼을 쓸 때(559조 원)보다 훨씬 커졌다. 작년 가처분소득의 1.46배. 금융위기 당시 미국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비율을 훌쩍 넘는 수준이다.

신통방통한 해법은 없다

2008년 이후 금융위기를 넘어오느라 돈과 환율을 넉넉히 풀자 부동산이 꿈틀댔고 너나없이 은행 빚을 내 집을 산 결과다. 이제 치솟는 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계속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게 되면 이자 부담에 쓰러지는 가계가 나타난다. 이런 부실채권이 쌓이면 은행도 직격탄을 맞는다. 새로운 금융위기의 복병이다.

문제가 곪을 대로 곪자 정부가 지난달 29일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거창한 이름과 달리 내용은 맹탕이다. 사실 신통한 해법이 있을 리도 없다. 고통스럽고 끈질긴 구조조정을 통해 은행과 가계의 건전성을 높여가는 수밖에. 일자리를 늘리고 가계소득을 증가시키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다. 이 칼럼이 5년 후에도 유효한 일은 다시 없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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