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섭 교수의 패션 에세이]<4>아시아(我視我), 나 자신을 볼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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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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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그룹코리아 제공
구찌그룹코리아 제공
모든 문명에는 흥망성쇠가 있고 문화 또한 앞서가다가도 한순간에 끝없이 추락하기도 한다. 근현대 역사에서 서양은 과학기술과 합리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앞세워 문화의 주도권을 행사했다. 주거환경과 음식은 물론이고 패션도 예외가 아니었다. 서양 옷을 입어야 시대를 앞서가는 패셔니스타로 인식됐다.

미래학자들이 21세기에는 문화의 중심축이 동양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예언할 때, 언제쯤 그게 가능해지는가 했더니 이제 현실로 슬슬 나타나고 있다. 실적과 능률에만 관심을 갖던 서양기업들이 동양철학서에 나오는 덕(德)을 경영 모토로 삼고 있다. 에어로빅이나 조깅처럼 격정적으로 움직여야 몸에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했던 서양 사람들이 명상이나 요가 같은 정적인 운동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고 있다.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의 풍요로운 맛을 포기하고 두부와 현미 같은 담백한 감칠맛을 찾기 시작했다.

패션에서도 이제 영감의 원천을 동양에서 찾아내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이러한 시도는 많아서 에스닉룩이라 하여 특정국가의 민속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지금은 재킷, 스커트, 팬츠 같은 아이템을 동양의 민속복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고 동양의 전통적인 색감이나 문양, 특정한 디테일이나 트리밍들로 새로운 룩을 창조해내고 있다.

드리스 반 노턴은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은은한 중간 톤의 색상을 조합해, 옷을 입은 이를 보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연상시키게 한다. 화려한 섹시함을 추구하는 로베르토 카발리는 화려함의 원천을 중국 청나라의 도자기에서 발견해 그 문양을 그대로 드레스에 옮겨놓기도 한다. 구찌도 2011 봄여름 컬렉션에서 오렌지, 바이올렛, 그린 등 한국의 단청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색상을 사용하고, 금색가죽으로 만든 기모노의 허리띠(사진)로 정열적인 도시여성상에 동양적인 감성을 녹여내고 있다.

푸른 눈을 가진 서양디자이너의 안목이 새로운 창조를 이끌어낸 반면 우리는 늘 접하고 있는 아시아의 아름다움을 간과했던 것 같다. 이제 우리가 제대로 봐 줄 차례다. 말 그대로 ‘아시아(我視我)’처럼.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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