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33>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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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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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가 사랑한 야생딸기… 유럽 건너와 과일로

요즘 딸기가 한창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과일인 만큼 딸기를 토종과일로 여기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우리가 딸기를 먹은 역사는 짧다. 우리나라에는 20세기 초반에 전해졌으니 열대과일인 바나나를 제외하면 가장 늦게 들어온 과일이다.

딸기는 서양에서 재배를 시작한 과일이지만 유럽에서도 딸기를 먹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0년 남짓이다. 프랑스혁명 직후 품종개량을 통해 지금의 딸기가 보급됐기 때문이다.

물론 옛날에도 딸기는 있었다. 다만 우리나라의 산딸기, 멍석딸기 같은 지역 고유의 야생종이 세계 곳곳에서 자라고 있었을 뿐이니 지금 먹는 딸기와는 많이 다르다. 지금의 딸기는 자연적으로 자란 토종딸기가 아니라 인공 교배를 통해 만들어낸 원예용 딸기다. 남미 칠레의 야생딸기와 북미 버지니아의 토종딸기를 교배해 품종개량으로 얻은 종자다.

그런데 지금의 딸기가 만들어진 배경이 흥미롭다. 유럽 열강이 세력다툼을 하는 와중 생긴 부산물로 프랑스의 스파이가 본연의 간첩임무가 아닌 ‘딴짓’을 했기 때문에 얻어진 결과물이다.

1711년 프랑스 국왕인 루이 14세가 육군 정보국 소속의 엔지니어 겸 수학자였던 프레지어 중령을 당시 스페인 식민지였던 칠레와 페루에 파견한다. 현지 주둔군의 수비태세 점검을 포함한 군사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루이 14세가 남미에 있는 스페인 식민지까지 스파이를 파견한 것은 스페인 국왕이었던 펠리페 5세가 그의 친손자였기 때문이다. 손자의 왕권을 보호함으로써 손자를 통해 스페인에 대한 프랑스의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막대한 자금을 들여 스페인과 관련된 군사정보를 수집했던 것이다. 여차하면 무력개입을 하기 위해서다.

간첩으로 칠레에 파견된 프레지어 중령은 해안가 요새를 중심으로 병력 수, 대포, 병참 등과 같은 군사정보와 총독 동향, 원주민 동태 등 모든 정보를 수집한다. 그러면서 정체를 감추려는 목적이었는지 틈틈이 해안가에 자생하고 있는 칠레 야생딸기를 관찰하고 스케치하는 등 딸기 연구에 빠진다. 그리고 1714년 귀국할 때 칠레 야생딸기 종자 몇 포기를 수집해 돌아왔다.

본연의 임무인 스파이 활동 결과에 대한 보고를 끝낸 프레지어 중령은 이후부터 엉뚱하게 칠레에서 관찰하고 수집한 현지 야생딸기에 관한 책을 출판하는 등 칠레 딸기 보급에 나선다. 그런데 칠레 현지에서는 빨갛고 계란 크기의 탐스러운 열매를 맺던 칠레 딸기가 유럽에서는 결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후 유럽의 육종학자들 사이에서는 칠레 딸기와 다른 야생딸기를 교배시켜 열매를 맺도록 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는데 영국의 식물학자 필립 밀러가 마침내 북미 버지니아 토종딸기와 교배시켜 새로운 품종의 딸기를 얻는 데 성공한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먹는 딸기의 원조다.

이때가 1764년이다. 신품종 중에서도 우수한 모종을 선별해 딸기의 대량 재배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1806년 전후다. 그러니까 우리가 먹는 딸기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로 불과 200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유럽에서 딸기는 식용이 아닌 관상용으로 재배를 했다니 만약 프랑스 스파이가 딴짓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딸기를 먹는 대신 화분에 담아 화초로 감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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