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 한줄]드라마 ‘파견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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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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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과 사생활 적당하게 거리두기

《 “과연 같은 일을 같이 하는 걸 친구라 할 수 있을까?”

-일본 TV 드라마 ‘파견의 품격’ 중에서
“요즘도 이 앞에 살아?”

회사에서 오랜만에 선배들을 만나면 자주 듣는 말이다. 그때마다 어색하게 답한다. “아…, 이사했어요.”

이런 말을 자주 듣는 건 입사 한 달 만에 지옥 같은 출근길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 근처 오피스텔로 이사했던 전력 때문이다. 길 건너에서 두 번만 앞구르기를 하면 회사에 도착할 만한 거리였다. 경찰서에서 먹고 자야 하는 수습 몇 달 동안은 좋았다. 회사로 복귀하기 전 몰래 집에 들러 발도 씻고 가끔 샤워도 했다. 천국이었다.

문제는 수습생활이 끝난 뒤였다. 주말에 세수도 안 하고 편의점에 가다가 먼발치에서 선배를 목격하고 꽁지에 불붙은 뭐처럼 집으로 도망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집이 회사요, 회사가 집인 지나치게 바람직한 ‘열혈 직장인’의 생활이 되고 만 것이다. 1년이 되어 가자 고민이 시작됐다. 상황이 잘 들어맞아 싸게 구한 황금 같은 전셋집…포기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 무렵 내게 금언처럼 다가온 드라마가 바로 ‘파견의 품격’(일본 NTV·2007년)이었다. 파견사원 문제를 다룬 드라마지만 실은 모든 직장인의 지침서라 할 만하다.

주인공 오마에 하루코(시노하라 료코)는 파견직이면서도 정규직보다 더 떵떵거리는 ‘혁명적 전환’을 이뤄낸 인물이다. 시급도 3000엔(3000원이 아니다)이나 되는 고소득자다. 그 비결은 위기의 순간마다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자격증! 복어 요리사, 미용사, 병아리 감별사, 안마사, 조산사, 성우, 거기다 현재 도쿄전력이 애타게 필요로 할 핵처리 자격증까지 갖고 있다.

그러나 진짜 능력은 따로 있다. 이분, 솔직하시다. 모두가 속으로 생각하지만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말을 과감히 내던진다. 친하다는 이유로 사사건건 도움을 청하는 동료? 따끔하게 말 한마디로 ‘퇴치’한다.

“과연 같은 일을 같이 하는 걸 친구라 할 수 있을까?”

그렇다. 동료는 친구의 동의어가 아니다. 사실 직장에서 필요한 친분에는 ‘팀워크’라는 이름이 따로 있다. 지나치게 밀착한 관계는 오히려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낳는다. 사람에게는 무릇 쉴 공간이 필요한 법. 회사와 나를 분리하고 내 생활을 지키는 게 건강한 회사생활을 가능케 한다. 지속 가능한 회사생활의 원동력은 바로 ‘거리두기’다.

오마에의 하루 일과는 이 ‘거리두기’의 결정체다. 우선 늘 3칼 법칙, 즉 칼출근, 칼점심, 칼퇴근을 준수한다. 퇴근 뒤엔 도쿄 한구석의 바에서 플라멩코를 추는, 나만의 취미생활도 있다. 한 회사와 3개월 이상 계약하지도 않는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도 않지만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그런 오마에가 못마땅해도 어쩌지 못한다. 일이 성사되도록 만드는 그녀의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수시로 물이 안 나오는 30년 묵은 월세 아파트로 옮겨온 것이다. 최소한의 거리두기다. 아침잠도 포기해야 하고 만원 지하철은 괴롭다. 하지만 휴일이면 민얼굴에 머리 질끈 묶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동네 슈퍼에 가는 자유를 찾았다. 다 오마에 ‘오네상’(언니) 덕분이다. 근데 내가 회사와 거리 두는 만큼 일을 성사시키는 능력도 갖게 됐냐고 묻는다면? 음…, 원고량이 다 찼다.

s9689478585@gmail.com

수세미
동아일보 기자. 이런 자기소개는 왠지 민망해서 두드러기 돋는 1인. 취향의 정글 속에서 원초적 즐거움에 기준을 둔 동물적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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