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떠나신 그분… 가득히 채워진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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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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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입적 1주기 정휴 스님 특별기고

《 ‘무소유’의 법정 스님이 우리 모두에게 진한 아쉬움을 남기고 입적한 지 1년이 됐다. “나도 한 번 법정처럼 살아보자”고 작심하고 30년 만에 선방에 들어 유난히 추웠던 올겨울 석 달을 설악산 백담사 무문관에서 보낸 운수(雲水) 정휴 스님(전 불교신문사 사장)이 본보에 기고문을 보내왔다. 법정 스님의 삶과 글에 대한 얘기는 많았으나, ‘절집에서 스님 법정의 자리’에 대한 평가는 드물었기에 큰 의미를 갖는다. 》
법정 스님이 입적한 지 벌써 1년이다. 그는 육신을 버리고 진리의 몸을 이루어 법신(法身)의 삶을 살고 있다. 원래 법신에는 고금이 없고 생멸이 없다. 그는 우주법계에 편재해 있다.

스님이 이 생애에 이룩한 역사적인 삶은 영원히 변치 않고 항상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이며, 인연 따라 은현자재(隱現自在)할 것이다. 그리고 일기일경(一機一境)을 통해 그의 본분(本分)은 곳곳에 나투어질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일초일목(一草一木)이 스님의 본분을 벗어나지 않았다면 지나간 바람소리뿐만 아니라 들리는 새소리 또한 스님의 본분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안목이 있어야 우리는 곳곳에서 ‘스님 법정’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지난겨울 한철 백담사 무문관에서 정진했다. 쉬는 시간 틈틈이 황벽어록과 임제어록을 읽으면서, 법정 스님이 번역한 ‘선가귀감(禪家龜鑑)’을 다시 한번 정독했다. 그러면서 그의 해박한 선적(禪的) 지식과 탐구의 깊이가 얼마나 넓고 광활한지 전율을 느꼈다. 첫 번역이 1962년도였으니까 그는 50년 전에 이미 선의 진수를 깨닫고 있었고 존재의 실상을 보는 안목과 존재의 핵심에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법정 스님은 오대산 오두막에서 영하 30도가 넘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언 계곡으로 가서 얼음을 깨고 물을 길어다 밥을 해 먹고 차를 끓여 마시면서 텅 빈 고요 속에서 내심자증(內心自證)을 통해 견성을 체험한 ‘인간적인 수행자’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법정 스님은 이 시대 정신적 거인이요 활안종사(活眼宗師)이다. 그는 일생 동안 일념정진으로 생사의 진통 속에서 푸른 눈을 연 눈 밝은 ‘선지식(善知識)’이었다. 번뇌의 불꽃 속에서 달구어진 지혜로 빛깔도 형체도 없는 본래 면목을 깨달은 대기대용(大機大用)을 갖춘 본분종사(本分宗師)였으며, 비우고 비워서 텅 빈 공적(空寂) 속에 들어가서 해탈의 자유를 얻은 우리 종문(宗門)의 눈 밝은 종장(宗匠)이었다.

그는 다른 선사들처럼 단박에 깨달은 것만이 옳은 법이고 깨달은 다음에도 계속해서 닦는 것은 그릇된 법이라고 비난하지 않았고, 다만 깨달음과 닦음의 대상은 곧 자기 자신과 중생이라고 항상 주장하였다. 그리고 자기의 깨달음이 이웃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 깨달음은 중생을 잃은 깨달음이며, 진정한 깨달음은 지혜의 완성이자 자비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누구보다 자연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새롭게 형성할 줄 알았고, 사유를 통해서 얽매임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터득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수행자들처럼 자신이 이룩한 깨달음의 세계에 안주하지 않았고 집착의 삶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인생은 어떤 목표나 완성이 아니고 끝없는 실험이요 시도”라고 고백한 ‘인간적인 수행자’였다.

법정은 견성실험에 있어 타성에 빠지지 않기 위해 ‘버리고 떠나는’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몸에 익힌 악습을 버리고 전지(剪枝)하는 데 피나는 노력을 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와 삶을 구현하기 위해 항상 깨어 있었다. 그래서 스님의 삶에는 인간적인 향기도 있고 아울러 덜어내지 못한 인간적인 고뇌도 있다. 고뇌를 통해 자유스러워지려는 정진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수행 가치가 오늘날 평가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스님 법정’의 자기완성의 정진은 언제나 벗어남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그가 남긴 어록을 보면 버리고 떠남, 그리고 내려놓음을 통해 자기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쳤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1주기를 앞두고 상좌들의 불화가 세상에 알려지고 한편으로는 법정을 비난하는 글도 인터넷 공간에 떠돌아다닌다고 한다. 옛말에도 지위가 높으면 위험이 닥치고 덕이 높으면 비방이 따른다고 했다. 그래서 만해는 경허의 어록 서문에서 “위대한 선사일수록 죽고 나면 인간적인 허물은 사라지고 깨달음의 정신만 남는다”고 했다. 지금은 법정의 인간적인 허물이 소멸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법정 스님을 향한 비난을 두려워하거나 안타까워해서는 안 된다. 그의 정신적 진수를 알기 위해서는 편견과 비난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그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정이 정신적 거인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정확한 비난과 비평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 법정의 본래 모습이 이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 오늘 길상사 추모법회… 사진-친필편지 전시 ▼

지난해 3월 11일 입적한 법정(法頂) 스님 1주기를 맞아 다양한 추모행사가 열린다. 28일 오전 11시 서울 성북구 길상사에서는 추모법회인 ‘다례재’가 봉행된다. 불교식 전통에 따라 입적한 날의 음력일(1월 26일)에 맞춰 마련됐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토포하우스에서는 ‘김성태-법정 스님의 죽비소리’전과 ‘법정 스님 입적 1주기 사진 전시회’가 열린다. 다음 달 8일까지 열리는 ‘김성태…’전에서는 캘리그래피스트 김성태 씨가 법정 스님의 책 속 문장들을 캘리그래피(손글씨)로 표현한 작품 30여 점이 전시되고, 3월 2일부터 8일까지 열리는 ‘법정 스님…’에서는 스님의 일상사를 담은 사진 30점을 선보인다. 전남 순천의 순천문학관에서는 법정 스님이 고 정채봉 동화작가에게 보낸 50여 장의 친필 편지를 전시하고 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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