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북 카페]英맨부커상 받은 ‘핀클러의 질문’ 엿보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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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세 남자’의 감정선 섬세하게 그려


12월이 되면 영국의 출판사와 서점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물론 크리스마스 때문이다. 가족끼리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하는 영국인은 대개 책을 선물에 포함시킨다. 그러므로 12월의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보면 한 해 동안 영국인에게 폭넓게 사랑 받은 책을 알 수 있다. 지난해 독보적인 책은 2010년 맨부커상을 받은 하워드 제이컵슨 소설 ‘핀클러의 질문(The Finkler Question·사진)’이다.

42년 전통의 맨부커상은 영국에서 노벨 문학상 다음으로 권위를 인정받는다. 게다가 베스트셀러를 보장받는다는 점에서 모든 작가가 꿈꾸는 상이다. 얼마 전 영국의 문학잡지인 ‘북셀러’가 맨부커상 수상과 판매 부수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는데 지난 10년간 맨부커상 수상작은 모두 수상 직후부터 판매지수가 적게는 10배, 많게는 100배 이상 뛴 것으로 나타났다. 핀클러의 질문 역시 맨부커상 수상 이후 크리스마스 선물 붐을 타고 엄청난 속도로 판매가 늘고 있다.

이야기의 중심인물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샘 핀클러와 줄리언 트레졸브, 그리고 그들의 역사교사였던 체코인 리보 셉치크 등 세 남자다. 줄리언은 대학을 졸업한 후 BBC에 입사했지만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고독한 회사생활을 10여 년 한 후 퇴사한다. 그 후 별다른 직업을 갖지 못하고 비정규직을 전전한다. 반면 샘은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뒤 이름 있는 철학자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부와 지명도를 쌓는다. 리보는 샘과 줄리언의 아버지뻘이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샘, 줄리언과 졸업 후에도 종종 만나며 깊은 우정을 쌓는다. 줄리언은 언제나 샘과 리보를 부러워했다, 그들의 ‘특별함’을, 그들만이 가진 독특한 유머와 재치, 그리고 철학을.

그러던 중 리보와 샘이 비슷한 시기에 상처(喪妻)를 하면서 세 남자는 리보의 아파트에 모인다. 50년 넘는 결혼생활 동안 부인을 끔찍이 사랑했던 리보, 두 아이를 낳고 살았지만 부부가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물론이고 그들의 사랑이 진실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샘, 한 번도 제대로 된 여자와 오랜 관계를 지속해 본 적 없는 줄리언. 와인에 흠뻑 취한 채 집으로 돌아가던 줄리언은 그날 밤 11시 30분 그의 인생을 뒤바꿔 놓을 ‘공격’을 당한다.

반세기 동안 최선을 다해 사랑한 부인을 잃은 90세의 남자는 어떻게 남은 생애를 살아가야 할까?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지나간 결혼생활에 의문을 가지게 된 남자는 과연 죽은 아내에 대한 진실을 찾을 수 있을까? 여러 여자에게 버림받아 왔던 남자는 이제 운명의 연인을 찾을 수 있을까? “재치와 지성, 인간에 대한 이해와 따뜻한 연민으로 무장한 소설”이라고 ‘옵서버’가 평가한 이 소설에서 독자들은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메일온선데이가 ‘현존하는 최고의 영국 작가’로 꼽은 제이컵슨은 남성 작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섬세한 문체로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신랄하게, 때로는 재미나게 묘사한다. 젊은 남녀 간의 통속적인 사랑이나 누군가를 죽이고 뒤쫓는 스릴러가 아니어도 충분히 독자를 감동시키고 몰두하게 만드는 소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핀클러의 질문’은 보여준다.

런던=안주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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