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100번째 원숭이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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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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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奇妙)―판스챵, 그림 제공 포털아트
기묘(奇妙)―판스챵, 그림 제공 포털아트
1950년 일본 미야자키 현 고지마라는 무인도에 마카크(macaque) 원숭이가 집단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원숭이에게 모래와 흙이 묻은 고구마를 먹이로 주었는데 원숭이들은 습관적으로 그것을 몸에다 문질러 흙과 모래를 털어낸 뒤에 먹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암컷 원숭이 한 마리가 고구마를 몸에 문지르지 않고 강물에 씻어먹는 장면이 목격되었습니다. 그러자 한 마리 두 마리 주변의 원숭이가 그것을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래잖아 고구마를 씻어 먹는 행위는 고지마 원숭이 집단 서식지의 새로운 행동 양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고구마를 씻어 먹는 행위는 고지마 지역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고지마 지역의 원숭이가 다른 지역으로 가서 가르쳐 주거나 보여주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의 원숭이도 고구마를 씻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같은 현상을 일컬어 ‘100번째 원숭이 신드롬’이라고 합니다. 전체적인 행동 변화를 위해 필요한 수치가 꼭 100마리에 국한된 게 아니라 원숭이 종(種) 전체에 공명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임계 수치를 100으로 상징한 것입니다.

비슷한 경우로 특정한 새가 집에 배달된 우유병의 뚜껑을 여는 법을 찾아내자 아주 짧은 동안 다른 지역의 같은 종 새들도 우유병 여는 법을 알아낸 사례가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가 그와 같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공명(共鳴)의 원리 때문입니다. 종 전체가 하나의 공명체로 연결되어 집단적인 사고나 행동양상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세상도 다를 바 없어서 10%의 선각자가 세상의 가치관과 구조를 바꾼다는 말이 그와 같은 공명 현상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인류가 오늘날까지 멸절하지 않고 문명과 문화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 수도 없이 많은 공명의 효과가 있었습니다. 악한 것보다 선한 것, 혼자인 것보다 함께하는 것, 독점하는 것보다 나누는 것을 중시하는 지고지선의 목표도 모두 공명의 결과로 얻어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보다 남을 위한 선행을 베풀고 혼자 누리기보다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기 위해 노력하는 공명의 핵심이 지구 곳곳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무수한 소셜네트워크도 공명의 원리를 바탕으로 인류의 사고와 행동양상을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대중과 매체의 힘이 무궁무진한 공명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세상은 평화로운 공명을 바탕으로 사랑과 나눔의 영역을 넓혀갑니다. 하지만 아직도 공명에 어울리지 못하는 동토가 있습니다. 동족의 삶의 터전에 포탄을 쏟아 붓고 남북한 동포 모두를 세습의 볼모로 잡아 전쟁 광대극을 일삼는 집단에 공명의 원리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생명과 생명 사이의 장엄한 연대, 존엄하고 숭고한 자연의 법칙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돌연변이 종이기 때문입니다. 고구마를 씻어 먹는 원숭이에게도 우유병을 열 줄 아는 새에게도 그들은 얼마나 이상한 종으로 보일까요. 그 얼어붙은 땅에도 사랑과 평화를 존중하는 마음이 공명하여 서로 얼싸안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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