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에 관하여’ 20선]<2>정의와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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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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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와 배려/마이클 카츠 외 엮음/인간사랑

《“배려와 정의는 종종 서로 다른 도덕적 사례에 적용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의로운 결정을 하거나 정의로운 정책을 수립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본래의 정책이 그 목적을 달성했는지, 새로운 불평등이나 해악을 발생했는가를 보기 위해서는 배려적인 실행과 배려에 의한 반성을 해야 한다.”》

정의와 배려는 서로 양립하는 개념처럼 보인다. 정의는 공정성,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것인 데 비해 배려는 개별성, 예외성을 고려해야 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집단적인 측면에서 정의의 원칙을 세우기 위해서는 개인에 대한 배려는 조금 접어두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정의와 배려가 양립하는 개념인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미국 대학에서 철학 윤리학 교육학 등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들은 책에서 정의론의 역사적 흐름을 소개하고 정의와 배려의 문제가 일선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적절히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점이 고려되어야 하는지를 여러 사례를 들어 소개한다.

책은 먼저 정의에 관한 이론을 소개한다. 정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소크라테스 시대로부터 서양 철학자들은 그 의미를 논해왔다. 정의는 때로는 마음의 평정상태와 행복을, 때로는 신과의 바람직한 관계를 의미하기도 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제도와 인간 간의 좋은 관계를 말했다. 계몽시대 이래 일반적으로 정의의 개념은 권리와 공평함의 개념과 연관지어졌다.

현대 정의론의 중심 문제는 ‘누가 무엇에 대해 권리를 갖는가’라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모든 사람의 자유에 대한 권리는 기본적으로 그 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제약받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널리 논의된 철학적 정의론은 존 롤스가 제기한 공정성으로서의 정의다. 그의 근본적인 생각은 사회는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에 따라 존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공평무사하다는 관점에 근거해 이론을 만들었다.

정의의 문제를 실제 학교 정책에 적용해보자. 1954년 미국 대법원은 흑인과 백인을 분리해 교육하도록 한 선례를 뒤집었다. 정의론에 따르면 모든 시민은 평등한 법의 보호를 누려야 하며 단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흑인 어린이를 학교에서 배제하는 것은 명백히 부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결정은 실제 흑인에게는 오히려 생활의 불편을 가져온 측면이 있었다. 미국 대도시는 인종별로 집단 거주지가 분리돼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인종별 통합 교육이 실행되면서 아이들을 거리가 상당히 떨어진 마을로 전학시켜야 했다. 또 백인과 함께 수업하는 흑인 학생의 경우 열등감 악화, 인종차별, 또래 공동체 상실 등의 문제에 부닥쳤다. 학계에서는 여러 인종이 함께 다니는 학교에서 소수집단의 학업성적이 향상되는지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에는 원칙적 정의보다는 흑인이라는 소수집단에 대한 배려가 더 효과적이고 실효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책에는 학교 내 성희롱, 표절의 처벌 문제 등을 예로 들어 학교 현장에서 정의와 배려를 어떻게 동시에 고려할 것인가를 탐구한다. 책을 마무리하며 저자들은 “정의와 배려 같은 도덕적 선(善)은 갈등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논쟁이 좋은 학교 공동체를 세우는 데 필요한 정책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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