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윤종구]오자와식 정치의 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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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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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을 만나면 받는 질문이 있다. “일본에 온 지 얼마나 됐나요?”

요새는 총리가 자주 바뀌다 보니 가끔 이런 질문이 뒤따른다. “그동안 총리는 몇 명이었나요?”

2008년 12월 도쿄에 부임한 이래 1년 9개월 동안 아소 다로(麻生太郞),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에 이어 간 나오토(菅直人)까지 3명의 총리를 지켜봤다. 며칠 후면 네 번째 총리를 맞을지도 모른다. 사실상 총리를 뽑는 9·14 민주당 대표선거는 간 총리와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간사장의 접전 양상이다.

일본은 선진국 가운데 유난히 총리의 재임 기간이 짧다. 1885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초대 총리 이후 125년 동안 61명의 총리가 있었다. 평균 2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65년 동안 32명의 총리가 2년 정도씩 재임했다. 요시다 시게루(吉田茂·6년 2개월),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7년 8개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5년 5개월) 등 ‘예외적인’ 장수 총리를 빼면 대체로 1년 남짓하고 물러난 셈이다. 2개월 만에 물러난 총리도 있다.

특정 정당이 장기집권하면 권력자가 장수하는 게 보통이다. 영국은 보수당이 집권한 1979년부터 18년 동안, 이후 노동당이 집권한 13년간 각각 두 명의 총리가 있었을 뿐이다. 독일의 헬무트 콜은 중도우파 연립내각이 집권한 1982년부터 16년 동안 총리였다. 일본은 1955년부터 반세기 동안 자민당이 집권했지만 총리는 수시로 바뀌었다.

이 배경엔 최고 권력자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권력을 즐기는 일본 특유의 정치문화가 있다. 큰 문제가 터지면 총리만 물러날 뿐 최고 권력자는 그대로다. 권력은 있고 책임은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는 1974년 퇴임한 후에도 10년 동안 ‘밤의 권력자’로 군림했다. 가네마루 신(金丸信) 전 자민당 부총재도 그랬고 오자와 전 간사장도 마찬가지다.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하토야마 등 5명의 총리는 재임시절 오자와의 권세에 눌렸다. 1980년대 후반 자민당 실세였던 오자와는 가이후 총리를 가리켜 “얼굴마담은 가벼울수록 좋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였다. 그래도 현직 총리는 아무 말도 못했다. 이게 ‘오자와식 정치’다.

일본은 옛날부터 그랬다. 막부를 통해 일본을 통치한 쇼군(將軍)도 일왕 자리를 넘보진 않았다. 간혹 쇼군보다 힘이 센 막부 각료도 있었지만 스스로 쇼군이 되진 않았다. 많은 권력자가 역성(易姓) 혁명을 꿈꾸거나 성공했던 우리 역사와는 사뭇 다르다.

이런 오자와식 정치가 종언을 앞두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오자와 전 간사장이 무대 뒷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총리가 되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오자와식 정치 종언의 이유다. 그가 선거에서 지면 말할 것도 없고, 총리가 되더라도 오자와식 정치는 설 땅이 없다. 오자와 본인이 자기보다 센 ‘무대 뒤 권력’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오자와 이후는 더욱 그러하다.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외상이나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국토교통상,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재무상 등 차세대 후보군은 한결같이 오자와식 정치를 혐오한다. 파벌정치의 본산인 자민당조차 그런 방향으로 바뀌는 중이다. 오자와식 정치에 대한 여론의 반발도 매우 거세졌다. 일본 정치는 지금 집권당 최고 실력자가 총리를 맡든지, 총리가 되면 실권을 행사하는 ‘무대 위 정치’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윤종구 도쿄특파원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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