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에 사는 사람들]“다문화가정에 ‘고향의 맛’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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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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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한&필 슈퍼’ 열대과일-채소 이주여성들에 공급
농가 소득원으로 떠올라… 전국에 단골손님 100여명

전남 강진군 강진읍 한&필 슈퍼 주인인 제니퍼 와이비헤그 씨(오른쪽)가 아들을 안은 채 슈퍼를 찾아온 다문화가정 손님들에게 통조림을 건네고 있다. 사진 제공 강진군
전남 강진군 강진읍 한&필 슈퍼 주인인 제니퍼 와이비헤그 씨(오른쪽)가 아들을 안은 채 슈퍼를 찾아온 다문화가정 손님들에게 통조림을 건네고 있다. 사진 제공 강진군
20일 전남 강진군 강진읍 한&필(Korea&Philippines) 슈퍼마켓. 넓이가 20m²(약 6평)밖에 되지 않는 작은 가게지만 생소한 열대 과일이나 채소, 외국 생필품 등을 팔고 있다. 이곳은 2006년 8월 문을 연 뒤 국내 다문화가정에서 재배한 열대 과일이나 채소 등을 전국 각지 이주 여성들에게 공급하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 다문화가정 사랑이 담긴 가게

전남 해남군 북평면에 사는 김성국 씨(45)는 한&필 슈퍼에 파파야 등 열대 과일을 납품하고 있다. 그는 필리핀 출신인 아내 김수정 씨(필리핀 이름 퀴티퀴트 마리로·36)가 입덧으로 고생하면서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자 5년 전부터 열대 농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는 현재 4000m²(약 1200평)에 이르는 농지에 열대 농작물 10여 종을 재배하며 부농의 꿈을 키우고 있다. 김 씨는 “올해는 망고를 심었다”며 “열대 농작물을 소득 작목으로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 함평군 손불면에 사는 필리핀 출신 인톡 엠 이멜다 씨(42·여)도 한&필 슈퍼마켓에 여주(열대오이) 등 열대 채소를 공급하고 있다. 이멜다 씨는 고향 채소 맛이 그리워 7년 전부터 텃밭에 열대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채소 일부는 한&필 슈퍼를 통해 다른 다문화가정에도 공급하고 있다. 결혼 11년차로 두 아들을 둔 한&필 슈퍼 주인 제니퍼 와이비헤그 씨(33·여)는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는 단골 이주여성 손님 100여 명이 꾸준히 열대 농작물을 주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열대 과일·채소 재배의 새로운 가능성

올해 전남지역에서 재배된 열대 과일나무 면적은 329ha(약 99만 평)이다. 재배되는 주요 열대 과일은 석류(64%), 한라봉(15%), 비파(9%) 등이다. 일부 농가에서는 파파야나 아테모야, 망고 등도 재배하고 있다. 수확된 열대 농작물은 대부분 수도권 소재 유통업체에 판매되거나 다문화가정에 공급되고 있다.

열대 농작물 농가들은 초기에는 재배법을 제대로 알지 못해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파종 시기나 병충해 방제 방법을 잘 몰라 수확량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필리핀 등 열대지방 국가에서 온 이주 여성들이 농사에 직접 참여하면서 생산량도 늘어났다. 변만호 전남도 농업기술원 과수연구소 연구사는 “이주 여성들이 재배법 조언 이외에 고향에서 다양한 종자(유전자 자원)를 가져오는 역할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남도는 최근 10년간 한반도의 평균 기온이 0.5도 상승하는 등 온난화의 영향을 받는 데다 관내 다문화가정이 6500가구에 이르는 점을 감안해 아열대과수단지를 시범 조성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기웅 순천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열대 과일 및 채소가 기후변화나 외국인 및 다문화가정 증가에 따른 식생활 변화로 수요가 늘고 있어 앞으로 새로운 농가소득원으로 부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진=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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