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저소득층 상대 ‘혁신학교’ 실험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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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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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에 실망한 학부모들이 대안학교를 찾는 경우가 있다. 대체로 고학력 학부모들이다. 기존 학교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녀를 교육하고 싶어 대안학교에 보낸다. 경기 성남시 분당의 이우학교가 그중 하나다. 이 학교는 주입식 암기식 수업을 피하고 토론 등 창의력을 키워주는 수업을 중시한다. 인성 교육은 기본이다. 학생들은 반드시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요즘에는 학교 이름이 많이 알려졌기 때문인지 누구나 알 만한 지도층 인사의 자녀가 많이 다닌다.

대안학교를 택한 학부모에겐 공통적인 고민이 있다. 학력 문제다. 애초부터 학력보다는 다른 쪽에 기대를 더 갖고 보냈지만 막상 자녀의 성적이 저조하면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대안학교의 인성 교육, 창의력 교육이 원론적으로는 이상적인 모델이기는 해도 성적 위주로 가르치는 일반 학교와 경쟁하면 대학 진학 면에서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일반 고교로 전학 가는 학생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고 대안학교 측이 기존의 정체성을 바꾸기도 어려울 것이다.

몇 해 전 이우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우학교가 색다른 모델이다 보니 다른 학교에서 견학을 자주 오고 있었다. 한 외부 인사는 “학교 담장 밖으로 한걸음만 나가면 치열한 경쟁사회, 학력사회인데 이 학교 학생들이 졸업 후 잘 적응할 수 있겠느냐. 나중에 학교를 원망하지 않겠느냐”고 학교 측에 물었다. 현재의 공교육이 불충분하다는 점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학교를 어떤 방향으로 바꿔야 하는지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안학교는 하나의 ‘대안’일 뿐이다.

‘학력 보완’이 시급한 아이들인데

어제 15개 시도교육청의 민선 교육감이 취임했다. 좌파 교육감 6명이 새로 탄생해 교육현장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들이 내건 대표적인 공약은 무상급식과 ‘혁신학교’다. 무상급식은 학생들에게 점심을 무료로 준다는 것이지만 ‘혁신학교’ 공약은 뭘 하겠다는 것인지 아직 확실치 않다. 지금까지 나온 얘기로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300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200개의 혁신학교를 세우겠다고 한다. 저소득층 지역, 소외 지역에 우선적으로 배치해 “개천에서 용이 나도록 하겠다”는 말(곽 교육감)도 했다. 저소득층을 상대로 한 역점사업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5월 당선된 뒤 이번에 재선된 김상곤 교육감은 이미 33개의 혁신학교를 운영 중이다. 혁신학교가 어떤 학교인지는 여기서 대충 드러난다. 이들 학교는 교장에게 운영의 자율권을 부여하고 토론 등 창의성 교육과 인성 교육을 중시한다. 현재 35명 정도인 학급당 학생 수를 이 학교는 30명 이하로 줄여주고 있다. 교육과정의 다양화 특성화를 강조한다. 분당의 이우학교와 흡사한데 실제로 이우학교가 모델인 듯하다.

좌파 교육감들은 혁신학교가 공교육의 새로운 틀이라고 주장하지만 ‘새로운 상품’은 아니다. 김영삼 정부 때 시도했던 ‘열린 교육’,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새 학교 문화 창조’, 정부 차원은 아니지만 친(親)전교조 성향의 유인종 전 서울시교육감이 내걸었던 ‘새 물결 운동’과 내용상 일치한다. ‘열린 교육’ 등도 모두 창의성 및 인성 교육을 강조했으나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온갖 아이디어를 다 짜내온 한국 교육에서 세상이 깜짝 놀랄 비법(秘法)이 더 있겠는가. 기존에 있던 것을 포장만 바꿔 내놓은 것이다.

혁신학교를 저소득층 학생을 상대로 먼저 도입하겠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저소득층 학생들 중에는 기초학력 미달자가 많다. 어릴 적 기초를 다지지 못한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꾸 뒤처져 낙오하는 사례가 되풀이되고 있다. 이들에게는 기초학력을 다져주는 일이 중요하다. 혁신학교에서 한다는 토론 수업의 경우 기본 지식이 없으면 토론에 참여할 수도 없다는 점을 교사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또한 혁신학교는 교사가 바로 교장에 발탁될 수 있도록 돼 있어 전교조 교사의 승진을 위한 제도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두발 자유를 허용하는 등의 운영 방식으로 미루어 전교조식 교육을 확산시키는 거점 학교로 운영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무엇보다도 힘없는 저소득층 학생을 상대로 검증되지 않은 어설픈 실험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좌파 교육감들 책임질 수 있나

여유 계층은 대안학교에서 잘 안 되면 돈 많은 부모의 사업을 물려받으면 되고, 외국 유학을 가도 되지만 저소득층에게는 두 번의 기회가 없다. 가난한 학생들이 맨손으로 험한 세상에 나가 쓴맛을 보았을 때 좌파 교육감이 아이들의 장래를 책임질 것인가. 저소득층 학생일수록 이념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도록 도와줘야 한다. 성공 확률이 높은 방법을 버리고 불확실한 교육을 확대하는 데 따른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쪽은 학생들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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