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내 안으로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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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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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신유경 그림 제공 포털아트
休-신유경 그림 제공 포털아트
신록의 계절이 되면 많은 사람이 여행을 떠납니다. 혼자 떠나거나 여럿이 어울려 떠나거나 여행은 일상을 벗어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인류가 유목적인 삶에서 벗어나 정착적인 삶을 시작하면서부터 여행이라는 개념이 형성되었을 거라는 유추가 가능하지만 인류 최초의 여행자를 떠올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가 인류 최초의 여행자일 수 있고 진화가 덜 된 유인원이 최초의 여행자일 수 있습니다.

여행이라는 개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정착지나 주거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배경을 생각한다면 최초의 여행자는 아마도 ‘지혜를 지닌 인간’이라는 뜻을 지닌 호모사피엔스 중에서 탄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은 석기문화를 지니고 농경 목축 생활을 하며 마침내 문명의 꽃을 피운 최초의 인류였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건 모험으로 간주되던 옛날의 여행과 달리 오늘날은 여행이 일상의 연장선이 되었습니다. 일상이 아니면 여행, 여행이 아니면 일상일 수밖에 없는 이중적 삶이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호모 노마드’라는 저서에서 21세기를 새로운 유목의 시대로 정의합니다. 여행의 고전적 의미가 와해되고 새로운 삶의 영역으로 여행의 의미가 확장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행 간다’는 말과 ‘놀러 간다’는 말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1년 내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관광버스의 행렬도 유람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광(觀光)이란 한자나 ‘sightseeing’이라는 영어 단어도 역시 풍광을 본다는 의미라 유람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요컨대 여행의 대상을 풍경과 외부 세계에 국한하면 고작해야 ‘카메라 여행’밖에 되지 않습니다.

여행은 ‘안’을 벗어나 ‘밖’으로 나가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는 역시 ‘안’입니다. 그때의 ‘안’은 삶의 터전이 아니라 정신적 근원으로서의 ‘안’입니다. 밖으로 나가 밖으로만 떠돌다 돌아온 사람에게 ‘안’은 권태와 타성의 지옥으로 비칩니다. 그래서 진정한 내적 성찰이 이루어지지 않은 여행은 후유증과 부적응을 낳고 또 다른 일상탈출을 불러옵니다. 여행이 아니라 습관적인 현실 도피증을 낳는 것입니다.

진정한 여행은 외부세계를 통해 내부세계를 지향합니다. 생동감을 잃거나 타성에 빠진 삶의 터전에서 벗어나 본래의 자아를 회복하고 자신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고자 한다면 여행을 놀이의 기회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행은 자신을 상실하는 기회이고, 상실을 통해 재생의 기회를 얻는 과정입니다.

혼자 길을 떠나 ‘나’라고 믿던 타성을 벗어던져 보세요. 그러면 또 하나의 ‘나’가 나타나 나를 마주봅니다. 아, 이토록 무구한 본성이 어디 숨어 있다가 이제야 나타나는가…. 진정한 여행은 정신적 무장해제와 고해성사를 통한 자기 구원의 기회입니다. 그것을 위해 떠나는 여행길, 나를 벗어나야 만날 수 있는 나, 나를 버려야 만날 수 있는 나를 만나 뜨거운 포옹을 해 보세요. 혼자인 외로움 속으로 들어가야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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