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북한과 운명을 나누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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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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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만 국민이 북한을 핵폭탄 아니면 어뢰로 등에 진 채 살고 있음에 오늘 또다시 전율할 것 같다. 물론 5000만 속에는 자국민 안보(安保)보다 김정일 집단의 안위(安危)를 먼저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 세력의 지형과 질량도 새롭게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천안함 침몰 진상에 대한 민군·국제 합동조사단의 발표는 그래서 더 주목된다.

구석구석 건재한 리영희 키즈

‘북한이 했다는 완벽한 증거는 아니다. 설혹 북이 했더라도 이명박 정권 탓이다’라고 말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리영희 씨(81)를 떠올리게 된다. 리 씨는 왼쪽엔 ‘시대의 스승’이라는 견장을 달고, 오른쪽엔 ‘친북좌파의 대부’라는 완장을 찬 인물이다. 2007년 5월 리 씨가 개성에 갔을 때 북한 내각참사 권호웅은 “민족적 선의로 글을 쓴 지조 있는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자 리 씨는 “(내가) 20∼30년 길러낸 후배와 제자들이 남측 사회를 쥐고 흔들고 있다”고 자랑했다.

당시 청와대 국가정보원 통일부 국방부 교육부,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그리고 ‘범국민’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북한 주장을 토씨도 안 틀리게 남한 사회에 퍼뜨리던 이른바 진보단체에서 ‘리영희 키즈’가 판을 친 것은 사실이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지금도 이들은 달라진 처지에 굴하지 않고 ‘산 자여 따르라’를 외치거나 어둠 속에서 뭉치고 있다. 이명박 정권 안에서도 리영희 키즈가 다 사라진 것 같지 않다.

리 씨의 실체를 알면 남한 내 친북좌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전남대는 2008년 6월 리 씨에게 제2회 후광 김대중 학술상을 주었다. ‘냉철한 이성으로 진실을 탐구하고 지성인의 양심으로 시대를 일깨운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지식인이며, 지식인의 시대적 사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귀감’이라는 게 선정 이유다.

리 씨는 ‘인간의 삶에 우리(남한)가 잃어버린 것을 저쪽은 간직하고 있다’며 북한을 찬양했고,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없는 데 대해선 ‘어쩌면 북한은 하나님 없이도 행복할지 모른다’고 했다. 나한테는 진실 탐구자의 말이 아니라 미친 사람의 잠꼬대로 들리지만, 아무튼 그는 그렇게 사람들을 세뇌했다.

그는 남북 간 체제경쟁에서 북한이 우세할 때는 통일을 열렬히 지지하다가 동구가 붕괴되고 남한의 우위가 뚜렷해진 1990년대부터는 ‘현 상태대로 통일이 오면 불행한 사태가 온다. 북한에 여유를 줘야 한다’고 표변했다. 리 씨는 ‘남한은 통일할 자격이 없다’는 식으로 몰아가면서 ‘북한이 가진 윤리와 철학과 실천방식을 통일을 통해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헌법에 따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부정하고, 북한이 원하는 내용과 방식의 통일을 받아들이자는 소리다. 그러면서 북한을 ‘평등과 나눔’의 세상으로 미화했다.

생존을 위한 眞僞와 善惡 뒤집기

김정일뿐 아니라 북한의 일부 ‘혁명 2세대’ 권력자까지도 수많은 여성을 개인의 성(性)노리개 삼아 인권을 유린한다. 극소수 특권층만이 외화벌이를 독점하며 호의호식한다. 절대 다수 주민은 굶주리다 못해 아사(餓死)로 내몰린다. 그래도 깨어 있던 20만 명은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신음한다. 그곳이 북한이다.

물론 리 씨 같은 사람이 그곳에 가서 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훌륭한 선전도구로 언제든 환영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리 씨는 북을 택하지 않고, 자신이 경멸하는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자유와 복지를 향유했다. 북한 중심의 통일사업을 위해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진위(眞僞)와 선악을 뒤집으면서까지 북한을 감싸고, 그 체제 유지를 돕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남쪽 사람들은 누구인가. 광복 후 1970년대 초반까지 북이 통일의 헤게모니를 쥘 것처럼 보이자 기회주의적으로 북한 찬양에 나섰다가 돌아서지 못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남한 기득층으로부터 소외됐다는 울분과 복수심에서 친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전두환 군부세력의 대척점에서 북을 우군으로 선택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남한 내의 이른바 보수 진보 정치지형 때문에 북을 끌어들이거나 북에 끌려간 세력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북이 천안함을 공격했음을 인정하면 선거에서 불리하다는 계산 때문에 진실과 거짓을 맞바꾸려 한다. 친북좌파 중에는 북한의 현 체제가 붕괴하면 딛고 있던 땅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위기를 맞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북한을 비호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이미 자유 과잉상태다.

그러나 위선과 억지의 가면은 언젠가는 벗겨질 것으로 나는 믿는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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