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천안함 저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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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7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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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만 있는 줄 알았던 국방위원장이 남에도 있는 걸 요즘에야 알게 된 국민이 없지 않을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김학송 국회 국방위원장이 요 며칠 날렸다. 천안함 침몰 이후 그는 국민의 알 권리를 채워주는 동시에 결과적으로 북에 유용한 군사정보도 많이 제공했다. 여당 소속이지만 역시 정치인이라 영토 영해 영공이 뚫리면 책임을 면치 못할 군(軍) 수뇌들보다는 스트레스가 덜한 모양이다.

非대칭의 남북 두 국방위원장

National Defense Committee로 영문 표기되는 국방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김태영 국방부 장관 등을 추궁하고 정치공세까지 벌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들이 과연 국가방위와 국민안전보장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 솔직히 의문이다. 국방위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특히 ‘북한 무관론’부터 펴는 일부 의원의 태도는 맹목적이어서 이들의 안보관이 새삼 궁금해진다. 책임의식이 없어선 안 될 정치인들이 무책임한 것은 인터넷 군중이 무책임한 것보다 훨씬 악성(惡性) 무책임이다.

원인의 실체는 불명인데 가설 위에서 과잉 논란을 벌이다 보니 본질을 벗어나 말꼬리를 잡게 되고, 그 꼬리를 머리인 양 흔들어대는 결과가 빚어진다. 군은 해명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북에 노출하지 말아야 할 군사기밀까지 건드리게 된다.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이진삼 의원은 천안함 침몰 이튿날 국방위에서 “모두 취침하는 동안 한 병사가 무슨 폭탄을 갖다 놓고 장난을 치지 않았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일말의 가능성이야 보통 국민도 상상해봤을 테니 이 의원이 실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적절했다고 나는 본다. 이 의원이 그러자 합동참모본부 정보작전처장인 이기식 해군 준장은 “탄약에 TNT를 장착해 터뜨린다면 가능성도 있다”며 그 부분도 조사하겠다고 답했다. 이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군이 그 점은 조사하지 않았을까.

세계가 주목하는 ‘진짜’ 국방위원장은 북에 있다. 그 김정일 위원장은 요즘 중국 방문 문제로 교란술을 부리고 있다. 차제에 우리가 새겨봐야 할 점은 북의 절대권력자가 18년째 ‘국방위원장’ 직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은 지난해 개정한 헌법 100조에 ‘국방위원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령도자이다’라고 더 확고히 명시했다.

선군(先軍)사상 운운하지만 요컨대 군국(軍國)이다. 우리 민족을 제멋대로 ‘김일성 민족’이라 하고, 노동당 규약의 적화(赤化)통일 목표를 지운 적이 없는 이 전제집단은 핵무장으로 민국(民國) 아닌 군국을 완성하는 데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李대통령 안보 리더십 시험대에

그런데 남은 어떤가. 저런 북을 머리에 이고 살면서도 어떻게 하면 우리 군을 더 책임감 있고, 더 영리하고, 더 강한 안보 보루로 만들어 나갈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커녕 정부와 정치권이 고뇌하는 모습조차 보기 어렵다.

경제적으로 더 잘살고 최신무기를 더 수입했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양상태가 아무리 좋은 청년도 이판사판으로 독기를 내뿜는 깡패를 못 당한다.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정신력이 풀리면 결국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북은 남쪽이 스스로 노출하는 정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다음 수(手)를 짜고 있을 텐데 남은 김 위원장의 방중 시점 하나도 갈피를 못 잡는다. 진부하지만 손자병법은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고 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야 위태로움을 줄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천안함 침몰 이후의 국내 정황은 ‘진실보다는 믿고 싶은 것만 신봉했던’ 2년 전 광우병 촛불사태 때처럼 흘러가는 일면이 있다.

물론 대통령과 군부터 정치적 고려나 면피·면책을 염두에 두고 진실을 가공(加工)하려 해선 안 된다. 일부 야당과 친북세력은 천안함 상황을 북이 만들었을 가능성에는 무조건 눈감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도 중대한 안보적 사태임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당연히 청와대부터 철두철미 안보의식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해군이 ‘작은 상황’에 대처하는 SOP(Standard Operation Procedure·표준작전체계)는 있는데 ‘이번처럼 큰 상황’에 대한 SOP는 없어 혼선이 있었다는 정부 일각의 자체평가가 사실이라면 걱정스럽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 임기 중 어느 날 갑자기 천안함 사태와는 비교가 안 될 전면적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천안함 저 너머 북의 어리석지만 충격적인 도발, 아니면 급변사태라고 하는 대요동(大搖動)까지 상정해야 한다.

어떤 종류의 안보 상황이건 말로 하는 대응태세, 종이 위의 개념계획대로 대처할 수 있을지 미덥지 않다. 천안함 사태는 이 대통령이 경제대통령이기 전에 군 최고통수권자로서 안보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이 대통령은 지금 안보 리더십을 시험받고 있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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