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터디/영화, 생각의 보물창고]그랜 토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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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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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희생… 구원에 이르는 ‘두 개의 문’

《여러분은 혹시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사람을 아시나요? ‘황야의 무법자’(1964)와 ‘석양의 무법자’(1966)에 총잡이로 출연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이 배우는 당시 ‘스파게티(마카로니) 웨스턴’(1960∼70년대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서부영화로 어떤 교훈이나 메시지 없이 무차별적으로 총질을 해대는 액션 장르)의 대명사와 다름없는 존재였습니다. 이후 그는 형사물인 ‘더티 해리’ 시리즈로 명성을 이어갔는데요. 악질적인 범죄자들을 법으로 다스리기는커녕 거대한 매그넘 권총으로 즉석에서 응징해 버리는 잔인무도한 형사의 활약상을 담은 영화였습니다. 다시 말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권총’ 하면 떠오르는 액션스타였지요.
하지만, 전설적인 재즈 색소포니스트 찰리 파커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버드’(1988)를 연출하면서 그의 인생과 예술관은 ‘확’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가 주연과 감독을 겸한 ‘용서받지 못한 자’(1992)는 ‘…무법자’ 시리즈와 달리 번뇌에 가득 찬 총잡이의 쓸쓸한 모습을 담고 있지요.》

진정 놀라운 일은, 그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예술적으로 더욱 성장해간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그가 나이 70세를 넘기면서 감독한 ‘미스틱 리버’(2003),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 ‘그랜 토리노’(2008),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2009)는 속죄와 구원이라는 메시지를 절묘하게 담아낸 수작들로 평가되지요. 이 노(老)감독은 어찌하여 말년으로 갈수록 이런 철학적인 메시지에 탐닉하는 걸까요? 혹시, 생명의 소중함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무지막지하게 총질을 해댔던 자신의 젊은 날에 대한 품격 있는 참회는 아닐까요?

[1] 스토리라인


포드자동차 회사에서 은퇴한 뒤 아내를 잃고 무료한 삶을 사는 월트(클린트 이스트우드). 보수적인 그는 세상만사에 늘 화가 나 있습니다. 아내의 장례식에 배꼽티셔츠를 입고 온 손녀를 포함한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 세대에 불만이고, 시도 때도 없이 자신에게 참회를 요구하는 성당의 풋내기 신부에 불만이고, 옆집에 사는 베트남계 가족에게도 불만이지요. 6·25한국전쟁에도 참전했던 그는 자신의 유일한 자랑거리인 1972년산 그랜 토리노 자동차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자신은 한낱 고집불통 늙은이가 아니라 번영된 미국의 오늘을 일군 주역이라고 말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옆집에 사는 소년 타오가 월트의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하다가 월트에게 적발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타오는 “그랜 토리노를 훔쳐오라”는 갱단의 협박에 견디다 못해 이런 일을 저질렀지요. 옆집에 사는 아시아계 소수민족에 대한 혐오감만 더 깊어지게 된 월트. 하지만 타오가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의 뜻으로 매일매일 월트의 집에 와 월트의 일을 도와주게 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타오와 그 가족의 따스한 가족애를 목격하면서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점차 열게 되는 월트. 타오를 친자식보다 더 사랑하게 된 그는 타오를 범죄의 세계로 끌어들이려는 갱단에 맞서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들을 ‘응징’하는데….

[2] 생각 키우기


아, 이 영화의 마지막 클라이맥스 장면은 가슴이 미어지면서도 진정 아름답습니다(영화를 안 보신 분을 위해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도록 하겠습니다). 월트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원칙인 ‘폭력’과 ‘응징’이 아니라, ‘비폭력’과 ‘희생’을 통해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하지요. 진정한 속죄를 하고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그랜 토리노를 타오에게 물려준다는 유서를 남기면서….

이 영화를 꿰뚫어보기 위해서는 영화 속에 시종 등장하는 다음 3가지 장치에 깃든 상징을 알아채야 합니다.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이들에 숨어있기 때문이지요. 자, 그럼 함께 살펴볼까요?

①그랜 토리노=월트가 과거 포드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하던 시절 자신의 손으로 직접 조립했던 자동차가 바로 이 그랜 토리노입니다. 다시 말해 이 자동차는 단지 ‘오래된 자동차’가 아니라 월트의 삶과 존재,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지요. 포드 자동차 회사에 다니면서 미국 경제를 일으켰고, 6·25한국전쟁에 참전해 세계의 자유를 지켜냈다는 자부심으로 그는 살아온 것입니다. 월트의 집 앞에 사시사철 게양된 성조기도 월트의 이런 내면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지요.

아들이 타고 다니는 일본산 자동차를 바라보면서 월트가 영 마뜩찮은 표정을 짓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됩니다. 미국에서 ‘포드’라는 자동차 브랜드는 ‘미국의 경제력’ 혹은 ‘미국의 역사’를 상징하는 일종의 기호입니다. 이런 포드 자동차를 외면하고 일본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아들, 그리고 그런 아들이 속해있는 이른바 ‘글로벌 시대’에 대해 월트가 동의할 수 없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요.

이렇게 보수적인 월트로선 아시아의 소수민족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오면서 점차 자신의 터전을 장악해 가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겠지요. 영화 초반에 그가 극심한 인종차별주의자의 모습을 보이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월트가 그토록 아끼던 그랜 토리노를 아시아계 이웃소년인 타오에게 물려주는 순간을 바라보세요. 월트가 지금껏 살아왔던 삶의 신조를 폐기하고 세상을 향해 뜨거운 마음을 열었다는 생생한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②총=월트의 인생을 지탱해온 인생관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 한마디로 요약됩니다. 나의 이익을 앗아가려는 자를 적으로 규정하고, 폭력을 통해 그들을 무자비하게 응징하며 살아온 것이 월트의 인생이지요. 회개를 유도하는 성당 신부를 싸늘하게 외면하면서 늘 장총과 권총을 휴대하고 다니는 월트의 모습에선 신(神)보단 무력과 폭력을 믿는 그의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클라이맥스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바라볼 때 더욱 깊은 감동을 줍니다. 갱단을 ‘응징’하기 위해 찾아간 월트는 주머니에서 권총 대신 자신이 6·25한국전쟁 참전 시부터 지금까지 지녀왔던 지포라이터를 꺼내지요! 폭력으로 일그러졌던 과거를 자기 목숨과 맞바꾸면서 속죄하는 상징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어요.

③이웃집 ‘몽’족(族)=월트의 옆집에 사는 베트남계 몽족의 존재 속엔 어떤 의미가 담겼다고 생각하나요? 답부터 말씀드릴게요. 월트가 그토록 무시하는 몽족은 알고 보면 월트와 똑같은 존재입니다. 월트나 몽족이나 미국의 ‘사회적 소수’이지요. 인종차별주의자였던 월트는 아시아계 소수민족인 몽족을 적대시하지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적대적 삶을 사는 월트 역시 미국사회에서 외면 받는 ‘구세대’ 혹은 ‘고집불통 늙은이’에 불과했던 것이지요. 결국 월트는 너무도 이질적이라고 생각했던 몽족에게서 어느새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결국 월트와 몽족은 친가족보다 더 따스한 마음을 나누는 일종의 ‘대안적 가족’을 형성하게 됩니다.

▶자세한 설명은 ezstudy.co.kr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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