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정재승]과학, 그 가슴 뛰는 낭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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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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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 멤버들의 음악을 하루로 표현하자면 존 레넌의 음악은 조용한 밤과 같고, 폴 매카트니는 활기찬 아침, 링고 스타는 떠들썩한 오후, 그리고 조지 해리슨은 평화로운 저녁과 같다. 비틀스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인간이 하루에 겪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

영국의 전설적인 4인조 밴드 비틀스의 음악에 대해 어느 음악평론가가 내놓은 찬사다. 그런데 이 찬사를 머지않아 외계생명체도 공감할 날이 올지 모르겠다. 뜬금없이 웬 외계인이냐 싶겠지만 비틀스의 음악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로 뻗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은 창립 50주년을 맞아 비틀스의 히트곡 중 하나인 ‘Across the Universe’를 430광년 떨어져 있는 북극성을 향해 쏘아 올렸다. 2007년 2월 5일 오전 9시, ‘우주를 가로지른다’는 노래 제목과 같이 이 곡을 MP3파일에 담아 초속 30만 km의 속도로 지구 밖 멀리 쏘아올린 것이다. ‘지구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비틀스를 좋아하는 사람과 비틀스의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이 유명한 말이 앞으로는 우주 전체에서 통용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고백건대, 나는 학창시절 나사가 위성을 통해 찍은 성운사진과 행성사진을 보며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정치기사, 살인과 강도가 범람하는 사회기사를 제치고 청록빛으로 채색된 ‘독수리성운 사진’이 신문 1면을 장식하는 것을 보며 더없이 낭만적인 과학의 매력에 빠졌다. 자신의 상상력을 지구 안에 가두지 않고 전우주적 스케일로 세상을 읊조리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낭만주의자’라고 믿었기에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대가족문화가 사라지고 ‘연애편지의 시대’는 지났다며 한탄하는 어르신도 많지만 사람은 늘 그 시대에 걸맞은 방식으로 낭만을 꿈꾼다. 그 안에 과학이 있다. 과학은 ‘인간의 꿈을 실현하는 문화적 도구’로서 더없이 소중하며, 그래서 과학은 도구가 아니라 문화다.

‘과학은 국가경쟁력’이라는 삭막한 도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미국의 에피소드 하나를 전하고 싶다. 북미공군사령부는 어린이들을 위해 해마다 아주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산타가 어디쯤 오는지 궁금해 하는 아이들이 전화를 걸면 산타의 위치와 경로를 알려주는 ‘산타 위치추적 서비스’가 바로 그것이다. 그것도 무려 55년 전인 1955년부터.

미국 콜로라도 주의 한 신문사가 크리스마스 무렵 ‘산타 상담전화’라는 코너를 신문에 실었는데 이를 후원하는 콜로라도스프링스의 백화점 전화번호를 싣는다는 것이 그만 ‘북미공군사령부 작전국장실’ 전화번호를 실어버렸다. 이 어이없는 실수로 북미공군사령부에 산타의 위치를 묻는 아이들의 문의전화가 폭주했다. 그러나 군에 소속된 과학기술자들이 아이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친절하게 산타의 위치를 안내해주었고, 그것이 계기가 돼 ‘산타 추적 서비스’라는 새로운 미션을 맡게 됐다.

해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그들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가동해 산타와 루돌프 일행을 추적한 결과 캐나다 상공에 있다는 둥, 지금 미국 뉴욕 주 상공에서 선물을 나눠주고 있다는 둥 산타소식을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아이들의 꿈과 믿음을 지켜주는 일. 그것이 과학기술로 무기를 만들어 나라를 지키는 일만큼이나 소중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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