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다함께]“이주여성 ‘언어장벽’ 넘게 해 정착 도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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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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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동대문구 다문화센터 돈나벨 카시퐁 씨
병원진료-부부싸움 중재
1000명에 통번역 서비스

“새로 한국에 온 사람들을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10년 전 제 모습 같아요. 조금만 일찍 시작했다면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도 있었을 텐데….”

15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동대문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만난 돈나벨 카시퐁 씨(39·여·사진)는 지난해 3월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여기서 서울과 경기 지역으로 시집온 필리핀 여성들을 위해 통번역 업무를 맡고 있다. 그가 돕는 필리핀 출신 여성은 하루에 3, 4명. 9개월 사이에 벌써 1000명이 넘는 필리핀 결혼이주여성이 그의 도움을 받았다.

카시퐁 씨 역시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 여성으로 1999년 12월 한국에 왔다. 그가 이주여성을 위한 통번역 활동에 나선 것은 힘들었던 초기 한국 생활의 기억 때문이다.

“처음 1년 동안은 거의 집에만 있었어요. 한국어를 배울 곳도 없고 누가 한국 생활을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죠. 혼자서 영어 TV만 보고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다문화가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 때라 타국 생활의 어려움을 하소연할 다른 필리핀 여성도 없었다. 혼자서 주한미군 방송의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보면서 한국어를 익혔다. 하지만 이젠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카시퐁 씨가 하는 일은 영역이 넓다. 관공서 서류 처리에서 병원 진료, 자녀 학습상담, 거기에다 부부싸움 중재까지 의뢰가 들어온다. 이혼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법원에 동행해 달라는 결혼 3개월 차 부부가 찾아 왔을 때 남편에게는 한국어로, 부인에게는 필리핀 말인 타갈로그어로 아침부터 하루 종일 설득해 겨우 이혼을 막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도 이젠 다문화가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필리핀 신부에게는 김치찌개 같은 한국음식을 잘 만들라고 하지만 부인이 임신해 필리핀 음식을 먹고 싶다고 하면 ‘난 그런 음식 안 먹는다’며 못 먹게 하는 남자들이 있어요. 그게 다문화가정일까요?” 카시퐁 씨는 “음식 관습 등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다문화가정에 진정한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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