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유종호]글의 아름다움을 읽는 눈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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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에서 유행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논문 쓰기에 바빠 연구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연구의 결과물이 논문이니까 모순 되는 소리처럼 들린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긴 안목으로 큰 주제를 파고들어 가야 하는데 한 해에 한 편씩 내야 하니까 조그만 주제에 매달려 논문을 쓰게 된다. 또 깊이 파고들어 가려면 우선 넓게 파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말로 쓰고 싶은 큰 책은 못쓰게 된다는 하소연이다. 연구 분야에 따라 세부 사정은 다르겠지만 이유 있는 고충이요, 볼멘소리다. 개개 학문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 처리하는 데서 오는 현상이다.

억지춘향 수능 문제 글 멀리하게 해

이와 비슷하게 벌써 오래전부터 문인 사이에 유행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국어 문제는 절반도 정답을 맞히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자기 작품이 출제되었는데도 못 맞혔다고 하는 시인도 많다. 물론 문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만점을 맞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능에 출제될 정도의 작품을 쓴 문인 사이에서 이런 우스갯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문제점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국어 능력을 사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로 평가해야 하는 현행 제도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문제 작성 자체가 어렵다. 거기다 변별성도 고려해야 하니까 무리가 따르고 적정성이 희박한 억지 춘향이 투의 문제가 나오기 쉽다. 그래서 국어 능력과 큰 관련이 없는 시험 요령이나 기술을 변별하는 문제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뾰족한 대안이나 수정안이 나올 수 없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주어진 조건에서 가능한 교육 방식의 개선책을 모색하고 이를 위해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몇 해 전 국내 어느 시인의 작품을 그리스 신화와 연관시킨 문제가 출제되어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문제 속의 시편과 그리스 신화 사이에는 어떤 유사성이나 유추(類推)관계도 찾을 수 없다. 그 작품은 숨겨진 의미가 있는 복잡한 시가 결코 아니다. 단순 소박하고 평범하기까지 한 작품인데 서울 경험이 없는 시골 나그네가 과천서부터 기듯이 미리 겁을 먹고 비장된 의미를 만들어낸 것이다. 일종의 의미 날조다.

그것은 관여 당사자의 일시적인 불찰이나 속단이 빚어낸 결과가 아니다. 출제자의 작품 이해가 부실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우리 어문교육의 누적된 문제점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파열음을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수험생에게 시에 대한 공포증과 함께 자신의 감수성이나 수용 능력에 대한 회의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님에도 그를 계기로 어문교육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나 토론이 이루어진 흔적은 없다.

스승 될 만한 글 많이 읽게 해야

중고교 수준의 국어교육이 지향하는 것은 독해력을 기르고 의사 표시와 자기표현으로서의 글쓰기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또 문학작품을 수용하고 향수(享受)할 수 있는 기초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문학교육은 단순히 정서교육 차원의 소관사가 아니고 국어교육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시를 공부하지 않고서는 말할 게 없다”는 대목이 논어에 보인다. 시를 배움이 곧 말 배움임을 뜻하면서 시 속에 말의 모든 가능성과 쓰임새가 드러나 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동양 전통뿐 아니라 서양 전통에서도 “시는 인간의 가장 완벽한 발언”이란 말로 같은 소리를 한다. 따라서 국어교육과 문학교육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접근하는 것도 문제다.

또 독해력과 글쓰기 능력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도 옳지 않다. 글쓰기 능력을 예전에는 글재주라 했다. 글재주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좋은 글과 서투른 글을 알아보는 식별 혹은 선별 능력이다. 좋은 글의 특징을 내면화하고 그것을 본으로 삼으면 자연히 좋은 글은 나오게 마련이다. 서투르거나 지리멸렬한 글은 서투른 글을 좋아하고 본뜬 것의 인과응보다. 부모가 반팔자란 말이 있지만 문학과 예술에선 스승이 반팔자다. 어떤 스승을 전범으로 삼느냐에 따라서 우열이 갈라진다. 글재주란 또 섬세한 정감이나 논리적인 사고를 생생하게 언어화하는 능력이지 글을 요란하게 단장하고 치장하는 잔재주가 아니다.

중고교 수준의 문학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글의 뜻풀이나 동원된 수사적 장치의 분석이나 작자의 신상 정보가 아니다. 글의 장단점을 인지하는 식별능력을 연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려면 좋은 글을 많이 읽히고 그 장점을 인지시켜야 하는데 우리는 그러질 않는다. 적게 읽히고 뜻풀이의 요령이나 가르치려 드니까 그런 체제 아래서 교육받은 전문가도 식별능력을 갖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문인도 정답을 맞히지 못하는 요상한 문제도 나온다. 표현이 단순한 수사적 문제가 아니라 사고와 깊이 연계되어 있음을 가르쳐 절실하게 실감시키는 일도 중요하다. 식별능력 강화에 역점을 두는 어문학교육을 위한 지적협동이 시급히 요청된다.

유종호 문학평론가·전 연세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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