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세 국회의원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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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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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순 민주당 국회의원은 지난해 7월 22일 미디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이튿날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그는 ‘언론, 표현의 자유, 헌법, 민주주의를 지켜내지 못했다’며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말했다.

그 다음 날에 천정배 민주당 의원이 사퇴했다. 그는 ‘언론 악법을 막아내지 못해 사퇴를 통해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헌신적인 자세와 자기희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라며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고 했다.

국민 속인 ‘사퇴 연극’

두 의원의 사퇴 의지는 단호해 보였다. 천 의원은 지난해 8월 ‘싸워야 할 때 싸우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회 등원을 거부하던 민주당 의원들이 등원을 결정한 직후였다. 천 의원은 ‘스스로 우리의 입장을 철회하고 등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라고 민주당을 공격했다.

천 의원은 지난해 10월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도 사퇴 의사가 확고함을 밝혔다. 그는 ‘이명박 정권의 언론 악법 처리에 항의해 의원직을 최종적으로 사퇴했다’며 ‘최종적으로’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국회의장이 신속하게 사퇴서를 수리했어야 마땅했다’며 ‘제 사퇴 문제를 국회의장이나 한나라당 의원들이 결정하게 되어 있는 제도에 모멸감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29일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유효’ 결정이 나온 뒤 민주당은 이들에게 사퇴 철회를 요청했다. 천 의원은 ‘언론 악법이 무효화되면 사퇴 사유가 원천적으로 없어지기 때문에 철회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번복할 이유가 없다’며 ‘국민과의 신의를 저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때 장세환 민주당 의원이 추가로 사퇴했다. 하지만 ‘사퇴 3인방’의 결기는 여기까지였다.

지난해 12월 이들은 투쟁 무대를 거리에서 국회로 옮겼다. 국회의장실에 몰려가 ‘미디어법을 재논의하라’고 요구했다. ‘빼앗긴 민주주의를 국민과 함께하는 광장에서 반드시 찾아오겠다’던 사람들이 갑자기 국회에 진을 친 이유가 궁금했다.

결국 이들은 10일 국회 복귀를 밝혔다. 국회로 돌아가라는 재야 원로와 시민단체의 권유와 충고에 따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사퇴 철회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헌법재판소의 무효 결정은 나오지 않았고 미디어법 재논의는 성사되지 못했다. 이들이 그동안 거리에서 쏟아냈던 ‘민주’ ‘희생’ ‘헌신’ 같은 멋진 말들이 한꺼번에 거짓으로 추락하는 순간이었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그 권력이 ‘국민과의 신의’보다 더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속한 진보 진영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대연합’을 결성 중이다. 이명박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이 모두 뭉쳐 선거를 치르자는 ‘반(反)MB연대’다. 오로지 반MB정서에 기대어 표를 모으겠다는 계산이다. 여기에는 시민단체들도 가세하고 있다. 진보 진영의 관심은 빼앗긴 정권을 다시 찾아오는 권력 투쟁에 있음을 드러낸다.

권력에만 관심 있는 진보

세 의원의 사퇴 번복에 대해서도 두둔하는 분위기다. 그나마 조경태 민주당 의원이 ‘우리 스스로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면서 대(對)정부 투쟁과 비판이 가능하겠느냐’고 발언에 나섰으나 내부에서 큰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지난 정권의 실패에 대한 성찰과, 진보를 진보답게 만드는 가치들을 외면하고, 권력 쟁취를 위해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모습이다. 이렇게 해서 정권을 잡아본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세 의원이 사퇴 철회 기자회견에서 함께 웃는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언뜻 계면쩍은 표정 같기도 하고, 다시 국회로 돌아온 뿌듯함에 활짝 웃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웃음의 의미는 어느 쪽일까.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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