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칼럼] ‘취업 사교육비’의 고통 더 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1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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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육정책은 초중고교의 사교육비 문제에 초점이 맞춰지고 정부 예산도 이쪽에 집중된다. 지난해 논란을 일으켰던 외국어고 운영 개선방안과 입학사정관 입시 확대 등이 모두 초중고교의 사교육비와 관련된 것이었다. 교육 운동권 단체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설 때도 이 문제가 걸려 있는 경우가 많다.

50대 실직 부모의 자식 無限지원

그러나 초중고교 사교육비 이상으로 부모들에게 고통을 주는 ‘취업 사교육비’에 대해서는 정부도, 운동권도 관심이 없다. ‘스펙(경력)’은 대학생들에게 절박한 단어가 됐다. ‘스펙 쌓기’는 취업에 앞서 자신이 얼마나 ‘준비된 인재’인가를 고용주에게 보여주기 위해 어학연수, 자격증 취득, 봉사활동 등 각종 경력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이 일 하나하나에 상당한 비용이 든다는 것은 겪어본 부모들이 잘 안다.

대학생 자녀를 해외에 어학연수 보내려면 부모는 수천만 원의 지출을 각오해야 한다. 자격증 취득은 돈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외모가 경쟁력인 세상이니 성형수술도 필요하면 고려해야 한다. 고시를 하겠다면 언제 합격할지 기약이 없는데도 인내심을 갖고 매달 돈을 보내준다. 차일피일 졸업을 미루는 대학 5학년, 6학년생의 휴학비용도 취업 사교육비의 연장선에 있다. 취업에 실패하면 도피처로 선택하는 대학원의 학비 역시 취업을 위한 추가비용이다.

이 돈을 내놓고 있는 사람들은 6·25전쟁 직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다.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해 교육의 ‘인생 역전’ 신화를 굳게 믿는 사람들, 유교적 가치관으로 자식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 그래서 자식을 위해 다걸기를 하는 사람들, 그렇지만 노후대책은 별로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략 50세 전후의 나이로 급속한 구조조정의 흐름에 밀려 직업 전선에서 이탈한 사람이 많다.

본인의 형편이 불안한데도 자식이 취업이라는 막바지 고비를 앞두고 있는 터라 없는 돈까지 보태 지원할 수밖에 없다. 경제활동이 가능하면서 초중고교 자녀를 둔 30대와 집에서 노는 50대 가운데 어느 쪽이 사교육비 고통의 강도가 높을지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수백 대 일까지 치솟는 취업 경쟁률 속에서 자식들은 낙방을 거듭하기 일쑤다. 부모마저 상심하는 모습을 보이면 더 의기소침할까 두려워 내색도 크게 할 수 없다. 그 사이 시름은 깊어간다. 우리 사회에서 이들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작은 것은 사회 중심에서 밀려난 나이 탓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모든 고통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다.

어느 포털사이트가 누리꾼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 ‘2010년 새해에 가장 바라는 일’은 ‘취업과 이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와 ‘더 좋은 일자리’에 대한 젊은 세대의 열망을 반영한다. 이들보다 더 간절하게 자식의 취업을 기다리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정부는 인력수급 틀 바꾸기 나서야

새해에는 경제가 크게 나아져 많은 젊은이가 취업에 성공하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나 청년 실업은 경제 회복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학 졸업자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졸자의 공급 과잉과 선호 직업의 편중 현상을 장기적으로 시정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어릴 적부터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가며 명문대에 진학한다 해도 대학 졸업 후 취업에 실패한다면 명문대 진학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정부는 교육과 인력 수급의 큰 그림을 보면서 교육의 단계마다 다양한 길을 터주고 흐름을 바로잡는 일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다행히 돈 버는 방법과 성공 모델이 다양해졌다. 시간이 걸릴 터이지만 국가 전체가 지금부터 차근차근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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