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法을 毒으로 만들 수 있는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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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8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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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본란에서 ‘바람직한 국회의원상(像)’에 관한 지인 30여 명의 의견을 일부나마 소개했다. 이들 중 몇 분은 ‘안이한 입법’ ‘포퓰리즘 입법’을 걱정하면서 “법을 마구잡이로 만들면 큰일 난다. 법 만능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입법만능주의 폐해 똑바로 봐야


물론 국회의원은 입법 활동이 제1의 책무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입법 건수가 곧 의원 성적표는 아니다. 어떤 법은 다수 국민과 국가에 이익이 되기는커녕 큰 폐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택 분야에서 분양가 상한제나 전월세 규제 같은 것도 그런 사례로 꼽혔다. 분양가 상한제는 주택가격을 낮추어 수요자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가 강조됐지만, 오히려 주택건설 감소로 장기적 공급 부족과 가격 불안을 키우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국토해양부는 올 초부터 민간주택의 분양가 상한제 폐지를 위한 주택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아직 여당과도 합의를 못보고 있다. 전월세 규제 역시 실효(實效)는 별로 없으면서 시장만 왜곡시키는 ‘무늬 좋고 실속 없는’ 제도로 예시됐다.

이런 법일수록 명분은 그럴듯하다. 그래서 반대를 하면 “업자 로비 받았느냐” “부자 편만 드느냐”는 식으로 공격하는 세력에게 시달려야 한다. 이 때문에 법의 부작용이 있어도 바꾸거나 없애기는 쉽지 않다. 지난날 입법에 찬성했던 의원들은 법을 잘못 만들었음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진 명분을 되뇌며 개폐(改廢)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

노동 분야의 비정규직법은 개정 불발로 결국 올 7월에 시행됐지만 이 때문에 몇 명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계약 해지를 당했는지, 아니면 정규직으로 전환됐는지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업종과 기업 규모에 따라서는 비정규직으로 1, 2년만 더 일하면 자연스럽게 정규직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법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가 하면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조차 불분명한 채, 임금 등 처우도 개선되지 않은 채 ‘구두계약’ 형식으로 어정쩡하게 일을 계속하는 근로자도 있다. 이대로 놔두면 비정규직법은 법률로서의 엄정성을 크게 상실한 채 근로자와 사용자가 각각 달리 해석하는 노동자 유형을 양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느 교수는 “왜 비정규직이 늘었는지 그 뿌리는 캐지 않고 법 만능주의에 빠져, 잘 지켜지지도 않을 법을 덜렁 만들어버린 결과”라고 꼬집었다.

지난 정부에서 성매매방지법을 제정할 당시 입법 효과와 그 반대 측면에 대한 비교 검토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성매매가 도덕적이란 말이냐”는 한마디에 입을 다문 정치인이 대부분이었다. 법 제정 3년 뒤인 2007년 여성부 조사에 따르면 성매매 및 성산업 규모는 줄어든 것으로 추정됐다. 그런데 지난 정부와 현 정부에 걸쳐 고위직을 지낸 어느 인사는 “아동에 대한 성폭력이 성매매방지법과 무관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성인에 대한 공격은 위험성이 크니까 아동을 대상으로 삼는 이런 성범죄가 성매매방지법의 한 ‘풍선효과’라는 추론이었다. 반드시 붙잡아야 할 강도나 도둑을 잘못 쫓아 양가(良家)의 담을 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도 있다.

폭풍 전야의 세종시법과 노조법

입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 법과 관련이 있는 국민의 기본권과 이익을 실질적으로 보호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법의 명분과 법 운용의 현실 사이에서 더 많은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올해 말과 내년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법(세종시법)과 노동조합관계법(복수노조 허용 및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이 나라를 흔들 소지가 있다. 어제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이 주최한 특강에서 신도철 숙명여대 교수(경제학)는 “(행정수도 이전은) 규모나 부정적 효과 면에서 광복 이후 최대의 포퓰리즘적 선거공약이었다”며 그 국가적 부담을 지적했다. 나의 ‘바람직한 국회의원상’ 의견 조사에 응한 지인 가운데서도 2005년의 세종시법 입법이 잘못됐음을 설명한 분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정운찬 국무총리가 운을 뗀 대로 세종시를 ‘교육과학기업도시’로 바꾸기 위한 법 개정이 쉽게 이루어질 공산은 현재로선 적다. 정치권 각 파당의 포퓰리즘과 선동공세는 맹렬하고, 어떤 안이 장기적 국익에 부합하는지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기는 어렵다.

복수노조 및 노조전임자 임금 문제는 노사관계에 다시 한 번 파란을 부를 가능성이 높다. 법 적용 유예시한이 40여 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노사정 간은 물론이고 정부와 여당 사이에도 이견만 드러날 뿐, 노사관계의 ‘안정과 선진화’를 동시에 이룰 접점은 누구도 찾지 못하고 있다.

경제의 해외변수를 비교적 잘 이겨낸다고 해도 세종시와 노사문제, 이 둘만으로 ‘한국만의 또 다른 위기’를 맞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다 입법의 위기와 연관된 일이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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