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역사]<14>경기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과 캐릭터전시관 ‘딸기가 좋아’

  • 입력 2009년 10월 14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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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땅에 126송이 예술꽃이 피다

《건축과 도시는 한 몸이다.

둘은 서로 가치를 공유하면서 개별과 집합이 어우러진 공간 미학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성장과 속도를 앞세운 현대 도시는 대부분 도시계획의 큰 틀 위에 개별 건축물이 들어서는 기계적 과정으로 형성된다.

그러다 보니 도시가 건축의 가치를 품지 못하고, 건축물 역시 독자적 존재감만 추구하게 됐다.》

126개 건물 각각 독특한 디자인
창작-공연-전시-교육 어우러져
만화 주인공 활용 ‘딸기가 좋아’
어린이와 교감하는 대표 건물로

21세기를 바라보던 길목에서 그런 도시의 생장을 돌아보는 성찰의 움직임이 일었다. ‘북 시티(book city)’를 만들겠다는 출판인들의 꿈과 건축가들의 열정이 의기투합한 경기 파주출판단지와 헤이리가 그것이다. 1994년 4월 이기웅 열화당 대표와 김언호 한길사 대표가 불씨를 지폈다. 고서(古書)를 지역 문화 콘텐츠로 관리하는 영국의 시골마을 ‘에이 온 웨이’를 닮은 문화예술도시를 만들려는 이들의 포부에 출판인 20여 명이 힘을 보탰다.

1997년 3월 이정호 현 헤이리 이사장, 황성옥 아트팩토리 대표 등이 참여한 ‘서화촌(書畵村) 건설위원회’가 발기인 모임을 가졌다. 그 뒤로 화가 도예가 건축가 영화인 작가 음악가 등이 참여해 회원 200여 명의 문화예술마을 조합이 결성됐다. 이들은 1999년 12월 동화공원묘지 인근의 구릉과 개천이 있는 버려진 땅 49만5800m²를 매입했다. 경계의 3분의 1 정도가 묘지에 접한 꺼림칙한 조건도 향후 난개발을 줄이는 데 유리한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착공은 2000년. 지금까지 126개의 건축물이 세워졌다.

‘헤이리’라는 이름은 ‘어 허허이 허허야 헤, 헤이리…’라고 부르는 파주 농요(農謠)에서 따왔다. 살림집과 함께 미술관, 음악스튜디오, 작업실, 도서관, 카페, 박물관, 어린이체험시설 등 다양한 문화예술 공간이 마련됐다. 문화예술의 창작, 전시, 공연, 교육이 어우러져 대중과 소통하는 공동체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개별 건축 행위가 도시 전체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일정한 질을 확보하도록 하려고 건축주들은 미리 약속을 했다. 마스터플랜 지침을 이끌 코디네이터로 건축가 김종규와 김준성 씨가 선정됐다. 두 사람은 ‘공동체성’이란 일관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건축주, 건축가들과 논의를 거듭했다.

건물 높이는 3층 이하로 제한해 자연 경관을 가리지 않게 했다. 담장을 없애고 시선 차단이 꼭 필요한 곳에는 나무를 심었다. 길은 곡선으로 내 자동차 속도를 줄였다. 도로는 아스팔트나 콘크리트가 아닌 블록으로 포장해 빗물이 스며드는 ‘살아 있는 땅’이 되도록 했다.

천차만별 개성의 국내외 건축가 36명은 이런 설계 지침을 존중하면서 저마다 독특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일상생활과 예술작업을 함께 영위할 공간을 얻고자 한 건축주들의 의지가 고비 때마다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헤이리는 올해 2월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파주시 문화지구로 선정됐다.

문화지구에는 노래방 술집 등 유흥을 위한 상업시설이 들어설 수 없다. 그런데 이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상업 건축물이 있다. 바로 2004년 6월 개관한 캐릭터전시관 ‘딸기가 좋아’다. 최문규와 조민석, 미국의 제임스 슬레이드가 함께 설계를 맡았다.

이들은 ‘만화 캐릭터를 활용한 건물은 놀이공원에서나 보는 촌스러운 상업 건물’이라는 인식을 허물기 위해 콘텐츠와 공간을 하나로 결합했다. 현실 공간에서 상상의 피조물들이 사람들과 교감하도록 한 것. 공간의 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 펼쳐진 스토리로 체험하는 건축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공간과 결합한 일본 도쿄 ‘미타카의 숲 지브리 미술관’에 비견할 만하다.

공간은 보는 즐거움보다 사용하는 기쁨이 커야 한다. 헤이리는 방문자의 감탄도 듣지만 ‘구경거리 박람회장’이라는 비판도 듣는다. 문화예술 활동보다 이를 담은 건축물의 화려함이 눈을 먼저 자극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마을에서 사람보다 건축적 이미지가 앞서는 모순이 생긴 것이다. “덜 미학적인 도시가 더 윤리적인 도시일 수 있다”는 2000년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주제가 떠오른다.

헤이리가 처음에 추구한 공공의 가치를 앞으로 계속 지켜나가려면 경계할 것들이 적지 않다. 특히 도덕적으로 해이한 상업성, 주관적 가치관에 대해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엘리트주의적 건축의 절제가 필요하다. 헤이리 예술마을을 통해 건축이 실험한 ‘공동체성’이 다른 도시에 번져가 파고들 때, 세상은 변화를 꿈꿀 수 있다.

이영범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

※⑮회는 장윤규 국민대 교수의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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