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투데이]‘조강지처 펀드’와 얼떨결에 이혼하면

  • 입력 2009년 9월 25일 02시 51분


코멘트
주가가 1,700을 넘으면서 예상한 대로 펀드 환매가 제법 큰 규모로 나오기 시작한다. 시장 전체로 본다면 본격적인 환매 움직임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이를 두고 한 일간지는 ‘분노의 환매’라고 제목을 뽑았다. 2년 전 펀드 열풍 때 가입했던 투자자들이 부진한 수익률로 분노를 쌓아오다 본전을 되찾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돈을 빼 간다는 얘기다. 제목이 너무 관능적이긴 하지만 상당 부분 사실이다.

다만 한두 가지 추가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우선 ‘분노의 환매’라기보단 ‘자연스러운’ 환매다. 알다시피 2007년 중반 펀드 열풍이 불면서 돈이 물밀듯 펀드로 몰려들었다. 2007년 6월부터 2008년 8월 금융위기 직전까지 국내외 펀드에 가입한 돈은 물경 90조 원에 이른다. 1년 남짓한 기간에 주식형 펀드 수탁액이 55조 원에서 144조 원으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해외펀드 가입액은 같은 기간 20조 원에서 60조 원으로 폭증해 한때 ‘펀드수출 대국’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런데 이 돈은 대부분 주가 1,500에서 2,070 사이에 유입됐다. 주가가 7분 능선을 넘어서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펀드 매수러시가 일어난 것이다. 이후 증시가 낳은 가슴 아픈 사연들은 재론하지 않기로 하자. 아무튼 천신만고 끝에 원금이 회복되니 환매가 나오는 것은 심리구조상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게다가 과거와는 다른 긍정적인 패턴도 발견된다. 상당수의 투자자들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펀드에 가입할 때는 부화뇌동한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마음고생을 하는 동안 투자에 대한 나름의 교훈을 얻었다. 우선 상당히 신중하게 환매를 결정한다.

금융위기 와중에도 적립식으로 꾸준히 가입한 투자자들은 이미 1,400을 넘어서면서 원금이 회복됐고 지금은 은행이자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런 투자자들은 환매도 증시 동향을 보면서 분할해 하는 것이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시장이 조금이라도 조정을 받는 날에는 어김없이 신규 가입자가 늘어나는 것도 긍정적이다. 남들은 환매를 호시탐탐 노리는 마당에 지금의 주가 수준에 펀드에 가입하는 투자자들은 장기투자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팔아야 할 사람이 팔아야 새로운 시장이 선다. 지난 2년간 최악의 금융위기 속에서도 적립식 장기투자는 결코 손해 본 장사가 아니었다. 더구나 어려운 고비를 같이 넘긴 조강지처 같은 펀드다. 그런데 금융위기가 끝나가는 초입에 가장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시장과 섣불리 절교 선언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결정이 아니다. 가입은 비록 얼떨결에 했더라도 환매마저 얼떨결에 따라하는 ‘이하동문’ 패턴을 반복하지 말자.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부사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