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 투데이]돌아온 시련의 계절… 쉬어가야 멀리 간다

  • 입력 2009년 9월 11일 0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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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한 바람이 가을을 실어온다. 한국인들에게 가을은 고향의 색깔이다. 누런 들판과 비취색 하늘, 한결 맑아진 동구 밖 개울과 집집마다 빨갛게 익어가는 감들이 마음 한편을 물들인다. 하지만 가을이 괴로운 사람도 적지 않다. 수험생이나 취직을 해야 하는 대학졸업생들에게 가을은 시련의 시기다. 증권맨들에게도 가을은 그리 낭만적이지 못하다. 통계적으로 지난 1세기 동안 가을과 증시는 좋은 궁합이 되지 못했다. 미국에서도 가을에 증시가 상승한 예가 별로 없다. 오히려 가을은 투자가에게 천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9년 대공황도 가을에 시작했고 1987년 블랙 먼데이도 가을에 발생했다. 우연히도 이번 금융위기도 작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래서 그런지 영어에 ‘서머랠리(Summer Rally)’란 말은 있어도 ‘오텀랠리(Autumn Rally)’란 단어는 없다.

과연 이번 가을은 예외가 될까? 최근 증시 분위기로 보면 큰 폭의 조정이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조정다운 조정’이 나타나는 것이 오히려 좋을 듯하다. 6개월 동안 증시가 50%나 상승해 에너지를 재충전해야 하는 시점인 데다 최근 증시 상승이 소수 우량 종목에 의해 주도되면서 업종 간, 종목 간 편차가 너무 심화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또 쉬지 않고 급등하면 십중팔구 원하지 않을 때 폭락해 모처럼 살아나는 투자 분위기를 망치기 때문에 적당한 조정은 투자가에게나 증시에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한편 실물경제도 잠시 쉬어가는 모양새다. 업종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3월에서 6월까지 강하게 반등하던 매출세가 다소 주춤하고 있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2분기 우리 국내총생산(GDP)이 전기 대비 10%나 성장했는데 이런 추세가 지속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한편으로는 경기회복을 위한 유동성 공급의 부작용으로 부동산 투기가 재연되고 있어 당국으로서도 경기부양정책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 마디로 증시나 실물경제나 ‘잠시 멈춤’이 있어야 한다.

경기와 증시가 예상보다 빨리 회복되면서 ‘위기감’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도 경계해야 될 일이다. 대공황 이래 최악이라고 외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분위기는 벌써 호경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모습이다. 여행수지가 다시 악화되고 있고 사치성 소비가 늘어난다. 특히 수도권 부동산에 대한 투기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경제위기 이후 산업 간, 계층 간 격차가 심화되는 와중에 부동산 투기로 서울과 지방 간 격차마저 커지면 한국경제의 기초체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며칠 뒤면 금융위기 1주년이 된다. 대대적인 기념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위기 이후 한국 경제에 대한 냉철한 ‘징비록(懲毖錄)’이 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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