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스포츠 외교와 월드컵

  • 입력 2009년 8월 25일 03시 04분


1971년 4월 6일 일본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 중이던 미국 탁구팀은 중국을 방문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1주일 후 미국과 중국 간의 탁구 경기를 위해 9명의 미국 선수와 2명의 배우자, 4명의 임원이 홍콩을 거쳐 중국 베이징까지 갔다. 이들이 바로 1949년 미국과 중국이 국교를 단절한 이후 최초로 중국을 방문한 미국 스포츠팀이었다. 핑퐁외교로 알려진 이들의 탁구 경기는 중국과 미국의 화해(reconciliation)와 국교 회복으로 이어졌으며, 스포츠가 외교에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입증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는 아직 수교가 되지 않았던 소련과 중국 이외에 10여 개국의 동유럽 국가가 참여했다. 한국에서 열린 올림픽에 참여하면서 선수단은 한국의 발전상을 몸소 체험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열리는 운동 경기와 한국의 발전상이 동유럽에 TV로 중계됨으로써 그때까지 냉전체제 속에서 격리됐던 한국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증진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한국은 서울 올림픽 주최를 계기로 동유럽 국가나 소련뿐 아니라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의 미수교국과 수교할 기회를 갖게 됐다.

그러나 스포츠가 늘 외교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1969년에는 남미의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간에 ‘축구전쟁’이 일어났다. 당시 1970년 월드컵 본선에 출전할 국가를 선발하는 예선전을 치르던 중 두 나라 응원단 간에 싸움이 일어났고 전쟁으로 이어졌다. 4일간의 전쟁 후 미주기구(OAS)의 개입으로 휴전했으나 축구 경기가 국가 간 전쟁으로 번지게 된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1980년에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는 이유로 미국을 위시한 62개국이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을 보이콧하여 80개국으로만 경기를 치렀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소련과 위성국을 포함하는 14개국이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참가를 거부했다.

2022월드컵 남북 분산개최 도전

이렇듯 스포츠는 외교에 직간접의 영향을 준다. 핑퐁외교나 서울 올림픽처럼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경우나 축구전쟁같이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경우 모두 스포츠 자체가 외교를 결정하지는 않았다. 이미 관계 개선을 결정한 나라가 스포츠를 활용하거나 관계가 나쁜 나라가 스포츠를 계기로 분쟁을 더 격화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분석이다.

스포츠는 외교뿐 아니라 국가이미지 향상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최근 양용은 선수가 타이거 우즈를 제치고 메이저 골프 대회인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함으로써 국민의 긍지와 사기를 진작시켰고, 박세리 선수는 십수 년 전 우리가 금융 위기로 침체해 있을 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대회를 석권함으로써 우리에게 커다란 용기를 주었다. 야구의 박찬호,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수영의 박태환, 골프의 최경주 선수도 국민의 긍지를 높여주고 우리나라의 이미지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스포츠 이벤트 중에서도 2002년의 한일 월드컵은 국가의 외교는 물론 국민 통합과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당시의 ‘대∼한민국’ 구호는 지금도 국민의 귓전에 남아 있다. 우리 팀을 성원하고 2002 월드컵의 성공을 염원하는 데는 남녀노소가 일치됐고 좌와 우, 지역 간의 갈등도 개입할 틈새가 없었다. 2002 월드컵은 여러 도시에서 열림으로써 지방의 균형발전에 이바지하고 국가 브랜드 향상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게임 자체에서는 4강에 진입함으로써 한국 스포츠의 위력을 과시하고 축구뿐 아니라 한국 스포츠 전체의 발전에 기여했다.

이제 우리나라는 2002 월드컵의 영광과 성과를 되살려 2022년 월드컵의 단독 주최를 추진한다. 경쟁이 심하나 한번 도전해볼 만한 사업이다. 월드컵은 올림픽과 대조적으로 축구라는 인기 종목 하나에 포커스를 두는 경기이므로 국내외에서 훨씬 더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벤트다. 우리나라와 같은 분단국으로서는 단독 주최가 성사될 경우, 북한과 분산 개최를 통해 남북 간의 교류협력을 활성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2022년까지 북한의 상황과 남북관계가 얼마나 진전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월드컵 분산 개최가 실현되면 남북한의 공동 번영과 한반도 평화에 크게 이바지한다는 점이다.

국민 한마음돼 유치활동 지원을

2022년 월드컵 주최국이 결정되기까지는 1년 4개월의 시간이 남아 있다. 한국 외에도 미국 러시아 영국 일본 호주 등 쟁쟁한 국가가 유치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축구 관계자뿐 아니라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가 요구된다. 몇몇 사람의 노력만으로 월드컵의 높은 고지를 오를 수는 없다. 2002년의 경험을 토대로 국민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한목소리를 내 준다면 2022년 월드컵은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그러나 이번에는 단독 주최로 열리는 전 세계인의 축제가 될 것이다.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전 외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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