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창조자” 한국을 바꾸는 IP세대

  • 입력 2008년 9월 30일 02시 58분


1990년이후 학번 2030세대

정치-경제적 콤플렉스 벗고

디자인-감성-세계화로 무장

“내 삶은 스스로 만들어간다”

단순 소비자 넘어 생산자로

대한민국 이끌 중심축 부상

《올해 초 모건스탠리 미국 뉴욕 본사에 입사한 김윤하(23·여) 씨. 그는 세 차례의 전화 면접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지는 심층 인터뷰인 ‘슈퍼 데이(Super Day)’ 면접을 거쳐 당당히 합격했다. 미국 브라운대 출신인 김 씨는 “말솜씨 좋은 미국 애들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대학 시절 다양한 학내 활동을 통해 ‘미국 영어’를 배우려 애썼고 그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외국계 금융회사에 다녔던 이지훈(34) 씨는 올해 3월 작은 음반회사를 직접 차렸다. 말쑥한 양복과 넥타이 차림으로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제대로 발산할 수 없었다고 한다.

“힘들다는 건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느끼는 감정’이라 생각해요. 퇴근 후 밤늦게까지 클럽 DJ로 활동하며 음악과 함께할 때 저는 정말 행복했어요. 돈과 바꿀 수 없는 그 기쁨 때문에 안정된 직장도 포기한 거죠.” 》

20대와 30대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부정적 이미지로 자주 그려졌다. 학력 저하를 의미하는 ‘이해찬 세대’, 경제난을 상징하는 ‘IMF 세대’, 비정규직의 그늘을 떠오르게 하는 ‘88만 원 세대’ 등의 표현처럼….

그러나 김 씨나 이 씨처럼 해외 인재들과 겨뤄 의미 있는 성취를 하거나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발상으로 21세기 한국의 희망을 예감하게 하는 젊은이도 적지 않다.

이동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2030세대는 대체로 산업화와 민주화가 이뤄진 뒤인 1990년 이후 대학생활을 보냈다”면서 “이들은 그 이전의 세대가 가졌던 정치적 경제적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운 첫 세대이며 21세기의 핵심 역량인 디자인, 감성, 글로벌 능력 등이 몸에 밴 세대”라고 분석했다.

배영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도 “지금의 2030세대는 이전 어느 세대보다 뛰어난 역량을 가졌지만 그동안 위축된 경제 환경 등으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한국 2030세대의 다양한 삶을 추적하고 전문가들과 함께 그 기저에 흐르는 시대적 사회적 문화적 특징을 분석한 결과 이들을 ‘IP(Independent Producer·독립적 생산자)세대’로 정의했다.

문화사회학자들은 “386세대 이상의 중장년 세대가 이념이나 구호의 집단적 추종자인 측면이 강했다면 IP세대는 독자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 가는 ‘생산자’의 개념이 훨씬 강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 총체적 모습을 기성세대처럼 산업화, 민주화 같은 단어 하나로 드러내기가 어렵다.

IP세대는 영문 머리글자 I와 P의 다양한 조합으로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보여준다.

이들은 정보화사회의 단순한 정보 수용자에서 벗어나 손수제작물(UCC) 등을 통해 ‘정보 제공자(Information Provider)’로 떠올랐다. 인터넷상의 ‘IP(Internet Protocol) 주소’는 이들에게 오프라인의 주민등록증을 능가하는 ‘사이버 신분증’이다.

또 ‘재미’가 있으면 ‘열정’을 불태우고(Interest & Passion), 외국어 능력과 다른 문화에 대한 유연성 등 ‘국제적 잠재역량(International Potential)’도 눈에 띈다.

기성세대가 가지 않았던 길을 열어가는 ‘혁신적 개척자(Innovative Pathfinder)’이면서 대학 시절부터 스스로 미래 인생을 설계하며 부(富)를 추구하는 ‘똑똑한 재테크(Intelligent Portfolio)족’이다.

IP세대는 ‘만질 수 없는 소프트웨어 능력(Intangible Power)’을 지녔고, 일방통행식 정치 참여에는 거부감을 보이지만 ‘상호 작용하는 참여(Interactive Participation)’에는 월드컵 거리응원만큼 뜨거운 호응을 보인다. 빠른 속도로 뜨거워지지만 그만큼 빨리 식는 ‘즉흥적 인간관계(Instant Partnership)’도 한 특징이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2030세대가 직면한 시대적 조류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지만 그 조류 속에서도 ‘내 삶을 내가 만들어간다’는 희망의 파도타기꾼(surfer)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하염없이 떠다니는 절망의 표류자(drifter)가 있다”고 진단했다.

대한민국의 21세기는 얼마나 많은 IP세대가 ‘세상의 변화를 자신의 발아래 놓고 즐기는’ 서퍼로 성장하느냐에 달려 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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