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가레스 에번스]러의 침공이 ‘보호책임’일까

  • 입력 2008년 9월 12일 02시 44분


러시아 정부는 그루지야에 대한 군사적 행동이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에 입각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보호책임은 2005년 유엔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으며 대규모 흉악범죄에 국제사회가 취할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 비탈리 추르킨 유엔대사는 그루지야가 남(南)오세티야 주민들을 ‘대량 학살’했다고 주장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은 러시아의 무력 사용이 “보호책임에 따른 행동이었다”고 강조했다.

세계 각국은 캄보디아 르완다에서 발생한 대량 학살 같은 사태가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데 합의했다. 그와 동시에 보호책임이 강대국들의 세력 과시를 위한 또 다른 변명거리로 오용되기 쉬울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었다.

보호책임은 러시아가 그루지야 침공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러시아 지도자들이 그루지야 사태에 개입하는 이유로 든 것은 “러시아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보호책임은 주권 국가가 영토 안에 거주하는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뜻한다. 그리고 해당 국가가 그럴 능력이 없을 경우 다른 국가들이 적절한 행동을 취해 개입할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보호책임은 개별 국가가 영토 밖에 거주하는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직접적인 행동을 취하는 문제에 대해선 거론하지 않는다.

과거에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외국 침공을 정당화하는 이유로 항상 ‘자위권’이 들먹여졌다. 다른 나라에 거주하는 자국민 보호라는 명목을 내세웠으나 늘 정당화의 신빙성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됐다.

보호책임엔 다섯 가지의 기준이 적용될 수 있으며 그 어느 것이라도 충족됐는지 명확하지 않다.

첫째, 위협의 심각성이다. “대량 학살, 전쟁 범죄, 인종 청소, 인류에 대한 범죄”라고 유엔은 규정했지만 그루지야의 남오세티야에 대한 조치가 이에 해당하는지 분명치 않다.

둘째, 대응을 시작하게 된 최초의 의도다. 러시아군의 개입 의도 중 하나가 공격을 받은 남오세티야 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지는 몰라도 그것이 우선적인 동기였는지에 대해선 의문점이 많다.

셋째, 군사적 조치는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돼야 한다. 이번 사태에서 평화적 해결책은 고려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그루지야가 남오세티야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중단하는 데 합의한 뒤에도 그루지야 영토를 계속 공격했다.

넷째, 대응의 정도다. 남오세티야와 더불어 그루지야 영토까지 침범한 러시아 탱크와 부대는 명백하게 과도한 규모였다. 러시아가 그루지야 각 지역을 공습하고 흑해를 봉쇄한 것은 최소한의 필요 조치를 초과했다.

다섯째, 개입으로 해(害)보다 도움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상황에선 피란민들의 탈출과 남오세티야 분리주의자들의 그루지야인에 대한 제멋대로의 보복 행동을 어떻게 봐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에 대해 합법적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유엔 총회는 보호책임을 이유로 군사적 수단을 사용하려면 안보리를 거쳐야 한다고 결정했다. 물론 대량 학살 같은 사태가 발생했는데도 안보리에서 한 국가 이상이 반대해 조치를 취할 수 없는 경우라면 매우 난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러시아는 안보리의 승인을 얻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가레스 에번스 국제위기그룹(ICG)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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