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어루만지는 책 30선]<1>불안

  • 입력 2008년 4월 28일 02시 59분


《“우리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다. 늘 외부에서 ‘사랑’이라는 헬륨을 불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 우리는 왜 세상에서 차지하는 자리에 대해 불안해하는가. 삶은 하나의 욕망을 또 다른 욕망으로, 하나의 불안을 또 다른 불안으로 바꿔가는 과정이다.”》

저자가 던진 ‘불안(Status Anxiety)’이란 숙제는 어렵다.

인간 역사를 돌아봐도 현 시대만큼 삶이 불안한 시대도 없다. 언제부터인가 세상에서 경제적 능력과 유용성만이 사회적 위상을 결정한다. 심하게 말해 18세기 산업혁명 직후 인간의 삶은 불안의 연속을 향해 달려왔다.

많은 것을 가져도, 높은 지위에 올라도 그리고 뛰어난 업적을 이룩해도 인간은 불안하다. 반대로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부를 얻을 수 없고, 공부해도 좋은 학벌을 얻지 못하거나 그토록 열망하는데도 사랑을 얻지 못하는 이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인간은 불안한가.

저자는 그 원인을 크게 5가지로 분석한다. 사랑 결핍과 속물근성, 기대심, 능력주의 그리고 불확실성. 돈이 많고 높은 지위에 올라도 사랑을 얻지 못하면 불안하다. 남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고픈 속물근성이 불안을 야기한다. 타인에 대한 지나친 기대, 현대 사회의 능력주의에 인간은 좌절하고 불안해한다. 고용주는 피고용자를 불안하게 하고, 그 고용주는 경제의 불확실성 탓에 불안하다. 불안의 소용돌이다.

저자는 이미 전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청미래)에서 개인 내면에 겹겹이 쌓인 복잡한 사랑의 방정식을 분석한 바 있다. 그런 작가가 사회 전반에 걸친 불안으로 눈을 돌린 이유는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건 늘 불안한 존재일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저자 특유의 상상력과 역사적 고증을 통해 프로이트 이후 최고의 ‘불안 백서(白書)’가 만들어진 것이다.

저자는 불안의 원인만 살핀 것은 아니다. 불안을 풀어갈 해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지나친 철학적 염세주의로 비판받던 쇼펜하우어나 존 러스킨의 일관된 엄숙주의에서도 불안을 제거할 유효성을 새롭게 찾아낸다. 여기에 예술적 풍자주의나 ‘월든’의 작가 헨리 소로의 삶도 자연스럽게 적용시킨다. 기독교 공동체적 삶이나 이데올로기를 이해하는 것도 또 다른 불안 해소법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불안 해법은 ‘보헤미안의 삶’이다. 일정한 위계를 거부하는 그들의 삶 속에 답이 있다고 본다. 다수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가치, 다수가 지닌 가치를 비판하는 새로운 가치를 통해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저자는 내다봤다.

아이러니하게도 ‘불안’을 읽는 작업은 꽤 불안하다. 일단 책이 어렵고, 정신과 전문의조차도 내면이 들통 날까 두려워진다. 그만큼 이 책은 사람의 깊은 어딘가를 지긋이 건드린다.

하지만 그와 함께 마음 한 구석에서 조금씩 일어나는 편안함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 어떻게 보이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는 그의 질문에서 군색하지만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불안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불안은 이제 싸워볼 만한 대상이 된다.

이영문 아주대의료원 정신건강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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