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박경미]수학용어처럼 복잡한 세상

  • 입력 2007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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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병이겠지만 신문을 읽다가 기사 제목이나 내용에서 방정식 함수 변곡점 황금분할 같은 수학용어를 발견하면 눈이 번쩍 뜨인다. 예를 들어 정치권의 통합 방정식, 경영에서 성공 방정식과 부(富)창출 방정식, 스포츠 팀의 승리 방정식, 영화의 흥행 방정식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방정식이라는 단어를 애용한다.

수학의 방정식은 문자를 포함하는 등식에서 문자의 값에 따라 등식이 참이 되기도 하고 거짓이 되기도 하는 경우를 말한다. 통합 방정식의 경우 통합을 하는 데 여러 변수가 있고 변수에 따라 통합이 성공하거나 실패할 수 있으므로 방정식이라는 표현은 대체적으로 적절하다.

방정식은 변수가 많은 고차 방정식, 국내 국제 남북 관계의 3차 방정식이란 표현에서 보듯이 차수와 함께 거론되기도 한다. 엄밀하게 따지면 변수의 개수와 방정식의 차수는 무관하다. 변수가 1개라도 고차 방정식이 될 수 있고 변수가 많아도 1차 방정식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의 개수에 따라 m원 방정식으로, 상황의 복잡도에 따라 n차 방정식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또 4차 방정식까지는 근의 공식, 즉 일반해가 존재하므로 해를 구할 수 없을 정도의 난맥상이라면 5차 방정식 이상이라는 표현이 안전하다. 국내 국제 남북 관계의 세 가지 변수를 강조하고 싶다면 3원 방정식, 일반적인 해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5차 방정식이라는 표현이 수학적으로는 더 정확하다.

함수는 가격과 효용의 함수 관계, 예비 경선과 본경선의 함수 관계, 특권과 오만의 함수 관계와 같이 여러 가지 요소 사이의 역학 관계에 주로 쓰인다. 함수는 한 변수가 정해짐에 따라 다른 변수의 값이 정해지는 관계를 나타내므로 적절한 표현이다. 변곡점은 주로 주식시장에서 사용하는 전문 용어지만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의 변곡점,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 관계의 변곡점, 영화 디워(The War)는 한국영화 진흥의 변곡점에서처럼 심심찮게 접하는 단어다. 수학의 변곡점은 그래프가 계속 증가 상태나 감소 상태를 유지하면서 그래프의 모양이 볼록에서 오목으로, 혹은 그 반대로 바뀌는 점으로 변곡점에서 두 번 미분한 값은 0이 된다. 주식의 변곡점은 수학의 의미를 충실히 반영하지만 다른 기사에 나오는 변곡점은 결정적 변화를 가져오는 전기(轉機)가 되는 지점을 지칭하므로 수학의 의미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선거 때 가장 자주 듣는 단어의 하나는 황금분할이다. 한 후보는 표를 많이 얻고 다른 후보는 명분을 얻는 식의 구도를 표현할 때, 혹은 팽팽한 다자간 분할인 경우에 사용한다. 수학에서 황금분할은 긴 부분과 짧은 부분의 길이의 비가 전체와 긴 부분의 길이의 비와 같아지도록 분할해서 나누어진 두 부분의 비가 약 1.618 대 1인 경우를 말한다. 일상적 표현에서 황금분할은 바람직하게 나뉘었다는 뜻이므로 수학의 의미와 다르게 쓰인다.

이처럼 신문에서 만나는 수학용어는 원래의 의미를 그대로 유지하기보다는 변질돼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언어의 세계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 새로운 용어가 생겨나고 기존 용어가 사어화(死語化)되기도 하며, 어떤 용어에 특정 의미를 담아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그 의미로 변화되고 고정된다.

수학용어가 일상어로 편입되면서 변화를 겪는 것은 일면 당연하다. 대개 학창시절 이후 잊힌 수학용어가 신문 기사에 출현하는 것은 중고교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수학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되살린다는 측면에서 일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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