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후지와라 기이치]거꾸로 가는 부시 외교

  • 입력 2007년 2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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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정권의 외교가 어디로 향하는지 종잡기 어렵다.

한편으로는 ‘단독행동주의’라고 불리는 정책이 남아 있다. 지난해 중간선거 패배가 이라크전쟁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져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해임되고 의회에서는 초당파 베이커-해밀턴 보고서가 제출됐다. 이는 이라크 정책을 전환할 좋은 기회로 보였으나 부시 정권은 이 보고서를 무시하듯 이라크에 대한 미군 증파를 결정하고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대규모 소탕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이미 이라크에 병력을 파견한 국가 대부분이 철수했고 가장 강력하게 부시 정권을 지원해 온 영국도 철수를 결정한 마당에 이라크 개입을 강화하는 것이다. ‘단독행동’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에선 다국 간 협조로 돌아가는 듯하기도 하다. 이번 6자회담에서는 ‘악의 축’이라고까지 불렀던 북한 김정일 정권에 대해 기존 핵무기 폐기도 명확하게 하지 않은 채 에너지 공급을 약속했다. 이는 1994년 빌 클린턴 정권의 대북정책에 극히 가까운 대응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다른 점이라면 1994년에는 미국이 줄곧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중국 정부가 주도권을 잡고 미국은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눈에 띄었다는 점일까.

또 이란 핵개발 문제에 대해서는 엄혹한 메시지야 보냈지만 구체적인 제재 조치에서는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과의 공동보조를 깨지 않았다. 더욱 기묘한 것은 이라크 정세를 타개하기 위해 이란을 이용한다는 베이커-해밀턴 보고서와 같은 방향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이란 정부를 압박하면서도 다국 간 협조는 깨지 않은 점이다.

이라크에서는 부시다운 단독 행동, 이라크 밖에서는 클린턴 같은 다국 간 외교와 관여 정책이라는 이 조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는 한마디로 이라크에서의 승리에 전력을 쏟고 이라크 정세가 전환되기 전까지는 다른 지역의 안정이나 평화 구축은 뒷전으로 미룬다는 정책이다. 미군을 이라크에 증파하는 동시에 아프가니스탄 등에서도 병력을 유지하려면 다른 지역에서 전투를 진행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단독으로 전쟁에 개입한다는 선택지를 잃어버린 이상, 다른 나라를 끌어들인 다자 간 외교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이라크 밖에선 클린턴의 외교를 떠올리게끔 하는 부시 외교는 간단히 말하면 미국의 약함을 드러낸 것이자 중동 이외의 지역에 대한 불개입 정책을 표현한 것이다. 북한도 이란도 이러한 미국의 전략적 딜레마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대미외교에서 강경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외교의 순서로는 거꾸로 된 것이 아닐까. 중동에서야말로 다자 간 외교가 필요하고 그 밖의 지역에서는 미국이 이니셔티브를 잡아야 한다. 이라크에서는 단기간에 승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란이나 시리아 정부와 협의해 현지의 급진 이슬람 세력을 고립시킬 필요가 있다.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이라크의 현 정권이 급진 이슬람 세력과 손잡는 것을 저지할 수는 없다고 각오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고수하는 한, 현지인들이 기대하는 세력이 권력을 잡는 것을 막을 순 없다. 필요한 것은 바람직한 이라크 정부를 만드는 정책이 아니고 현재의 이라크 정부를 안정시키는 정책이다.

미국 단독으로 이라크 정세를 안정시키기 어렵다면 다른 나라가 이라크에 관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지금은 거꾸로 동맹국이 발을 빼 미국의 부담이 늘어나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미국 외교가 중동에 몰두하면 할수록 미국의 이니셔티브에 의존해 온 세계 각지의 안정은 흔들려 버릴 것이다. 여러 나라를 끌어들이는 외교가 무엇보다 필요한 곳은 중동이고, 이라크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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