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한국’ 바로잡자]<2>표절 예방교육 실태-해외

  • 입력 2007년 2월 21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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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대학생들이 숙제를 하거나 논문을 쓸 때 표절에 각별히 조심하는 태도는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게 아니다. 어릴 때부터 질서 있게 줄을 서고, 교통신호를 잘 지키는 등 시민의식이 몸에 밸 정도로 철저히 배우고 학교에서는 정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도록 가르친다. 이런 밑거름 속에서 표절을 멀리하는 학문의 규칙이나 양심의 명령을 지키는 의식이 자리 잡게 된다.

▽학교와 가정이 손잡고 표절 예방=“과제물은 ‘창의성’이 채점 기준이고…인터넷 내용을 베껴 학생 자신의 주관이 들어가 있지 않은 에세이는 최저점을 준다.”

캐나다 밴쿠버의 포리스트힐 중학교가 학기 초 학부모에게 보내는 과제물 작성 요령 등에 관한 가정통신문의 일부분이다.

학교 측은 부모가 학생이 과제물을 작성하는 것을 지켜보도록 권유하고, 과제물 아래 확인란에 서명하도록 요구한다. 학생은 모든 과제를 직접 손으로 쓰고, 인터넷에선 관련 부속물을 찾아 인쇄해 별도로 제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과제물을 발표할 때는 참고한 인터넷 사이트를 학생들에게 알려야 한다. 이 학교 8학년생 김모(15) 군은 “인터넷을 참고하면 사이트와 사이트의 페이지까지 명기해야 하고, 컴퓨터로 작성할 경우 인용된 대목의 색깔을 달리 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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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온타리오 주 윗비 초등학교 교사 퍼트리샤 캐스타노스(28·여) 씨는 “가정에서도 자녀에게 정직한 글짓기 습관을 들이기 위해 표절 방지 교육을 중요하게 여긴다”며 “부모는 자녀가 직접 쓴 글이 아니면 다시 쓰라고 지도한다”고 말했다.

▽표절하면 엄격한 벌칙=프랑스에서 자란 박혜진(21·여) 씨는 “어렸을 때부터 표절하지 말라는 말을 하도 들어서 ‘표절=나쁜 짓’이란 생각이 머리에 박혔다”며 “중학교 3학년 때 라틴어를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숙제를 베낀 학생이 걸려 엄청나게 혼났다”고 말했다.

프랑스 학교에서는 표절 사실이 드러나면 20점 만점에 4점 이상을 주지 않는다. 3문장 이상이 같으면 표절로 간주된다. 이런 엄격함은 단순히 정직성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만들어 내는 창의성은 표절이 아닌 정직함 속에서 꽃핀다는 철학이 반영되어 있다.

영국에서는 에세이와 비평 과제가 집중적으로 늘어나는 중학교 때부터 표절 예방 교육이 시작된다. 교사들은 숙제를 내줄 때마다 “정답은 없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베끼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담아라”는 말을 지겹도록 반복한다.

고교 1학년 때까지 영국에서 지낸 한국외국어대 4학년 박모(24) 씨는 “교사들이 나만의 생각을 요구하기 때문에 표절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며 “베끼다 걸리면 교사의 처벌보다는 친구들로부터 ‘생각이 없는 아이’로 찍히는 걸 더 두렵게 여긴다”고 말했다.

영국문화원 영어강사인 샐리 핸더슨(31·여) 씨는 “학생이 자꾸 표절하면 학부모를 불러 이를 알려주고 교사가 부모의 숙제 점검 방식, 자녀 학업에 대한 관심도 등을 상담하는 절차를 밟는다”고 말했다. 부모도 표절 예방 교육을 받는 셈이다.

캐나다의 한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김혜진(28·여) 씨는 “오리엔테이션 때 학교 측이 ‘지금까지 당신들이 생각했던 표절 개념과 우리의 표절 개념은 큰 차이가 있으니 실수로라도 출처 없이 글을 옮기지 말라’고 경고했다”며 “출처를 많이 밝힐수록 준비를 꼼꼼히 했다는 의미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미국 고교 1학년 때 숙제를 베껴 낸 적이 있는 이모(29) 씨는 자신의 과제물에 빨간 줄이 가득 쳐져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도서관에서 요약본을 빌려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관한 보고서를 써냈다가 교사에게 들킨 것이다.

그는 “낙제를 당할 뻔했지만 교사가 점수를 깎는 선에서 선처해 위기를 모면했다”며 “그 교사가 ‘다시는 베끼지 마라’고 훈계한 이후 표절은 꿈도 꾸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교육방식의 차이=전문가들은 표절에 대한 인식은 교육과정과 방식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한국은 국어 교과의 경우 책이나 자료를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등 지식 교육에 역점을 두고 있는 반면 미국 등에선 글을 읽고 에세이를 써 보는 교육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이 어떻게 느꼈는가를 쓰도록 하기 때문에 표절을 하기 어려운 구조다. 올바른 글쓰기 교육 자체가 표절 예방 교육인 셈이다.

한국 대학에서 8년간 근무한 일본 가고시마대 로버트 파우저 교수는 “한국이나 일본은 읽기 교육에 치중해 표절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며 “표절은 교사나 교수의 교육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교수들은 뭐가 바쁜지 과제물을 읽지 않고 피드백도 잘 안 해 준다”면서 “교수가 과제물에 엄격하면 학생들은 표절할 생각을 못한다”고 덧붙였다.

<특별취재팀>

▽팀장

이인철 교육생활부 차장 inchul@donga.com

▽교육생활부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문화부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사회부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국제부

금동근 파리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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