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정광화]평, 근, 자… 이젠 버리자

  • 입력 2006년 11월 21일 19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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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에 바벨탑 얘기가 나온다. 인간이 하늘까지 닿는 바벨탑을 세우려 할 때 하느님은 서로 다른 말을 써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도록 해 시도를 무산시켰다. 언어의 통일이 중요함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시다.

경제활동에서 언어의 통일에 해당하는 것이 표준이며 표준의 핵심은 ‘단위’라는 기준이다. 진시황이 중국 통일 후 제일 먼저 착수한 것이 도량형 제도 정비였다. 조선시대 암행어사는 임금이 친히 내린 놋쇠로 만든 기준자(유척)를 갖고 다니며 지방 수령들의 국민 수탈과 횡령을 방지하였다.

경제 블록별로 단위는 다르게 발전해 동양은 척관법이, 미국이나 영국은 야드파운드법이 발전하였으며 프랑스 혁명정부는 m와 kg을 사용하는 미터법을 제정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척관법의 기본 개념은 같지만 단위의 크기는 달랐다. 일본은 조선을 지배하면서 단위의 통일을 시도했으며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근, 척의 크기는 그때 정해졌다. 야드파운드법의 단위도 영국과 미국이 서로 다르다.

산업혁명 이후 국가 간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거래 단위의 통일이 필요해졌다. 영국에서 프랑스에 공산품을 수출하려면 미터법으로 표시하고,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포도주를 팔려면 야드파운드 단위로 표시하고 있었다.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1875년 17개국이 모여 국제적으로 미터협약을 체결하고 가장 과학적으로 정의되고 체계가 잡힌 미터법을 채택하였다. 우리나라는 1959년 미터협약에 가입하고 1961년 미터법을 발전시킨 국제단위를 법정단위로 정했다.

우리가 길이나 무게에 대하여 얘기할 때 1.5m 또는 500g에 대한 느낌이 있다. 아파트 35평이라고 하면 크기를 짐작하지만 116m²라고 하면 크기를 인식하기 어렵다. 오랫동안 평수를 기본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등기부를 보면 평이라는 단위는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 면적을 구하기 위한 가로세로 길이를 미터법으로 측정한 후 평으로 환산하는 것이다. 1평의 넓이도 사실은 가로세로 6자가 아니라 약 1.8m를 기준으로 한다.

게다가 평, 근 등 비(非)법정단위는 같은 단위가 대상에 따라 크기가 달라 혼란을 야기한다. 한 평의 넓이가 땅은 3.3m²이고, 유리는 0.09m²이다. 1근의 무게가 육류는 600g, 채소는 400g, 과일은 200g이다. 인삼 1근은 300g에서 600g까지 다르다. 음식점에서 고기 1인분은 100∼300g으로 집마다, 또 고기 종류에 따라 다르다. 음식점에서 가족 수대로 고기를 주문했다가 1인분이 다른 집의 2인분에 해당할 정도로 많아 절반 이상 남긴 적이 있는데, 그 음식점의 상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위의 혼란은 대부분의 경우 소비자에게 피해를 준다.

정부는 내년 7월부터 비법정단위 사용을 단속한다. 앞으로는 비법정단위를 사용한 광고도 하지 못한다. 정부는 상거래를 포함한 경제생활에서 정확성과 공정성을 법적으로 확보할 책임이 있다. 물론 법정단위를 사용함에 따른 국민 불편을 최소화해야 한다. 법정단위 사용을 강제하기만 할 게 아니라 아파트 분양을 미터법으로 한다든지, 도로 표지판에서 미터법을 정확하게 사용하는 등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에만 요구할 일이 아니라 우리부터도 법정단위 사용을 생활화하자. 단위는 크기와 양에 대한 의사소통 도구이다. 서로 크기를 인식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단위로 얘기해야 한다. 처음에는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금방 익숙해질 것이며 더 간단하고 일관성 있는 단위 사용이 더 편리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정광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 물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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