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카페]흉기 든 소비자

  • 입력 2006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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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택계열 박병엽 부회장이 테러를 당할 뻔했습니다. 범인은 고객이었습니다. 그는 경찰에서 말했습니다. “AS센터 직원이 조금만 더 잘 대해 줬어도…” 팬택엔 좋은 반성의 기회입니다. 좋은 약입니다. 다시 생각합니다. 소비자는 왕이다.》

‘소비자가 왕(王)’이란 말은 이제 너무 흔해져 진부하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이 말은 기업 경영에서 영원히 금과옥조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회사가 제품을 잘못 만들거나 애프터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큰코다칠 수 있습니다.

박병엽 팬택계열 부회장이 한동안 겪은 마음고생을 들어 보십시오.

중국음식점 배달원이었던 배모(25) 씨가 최근 구속됐습니다. 자신의 휴대전화 이어폰이 고장 난 데 불만을 품고 이 휴대전화의 제조회사인 팬택의 박 부회장을 협박하고 금품을 갈취했기 때문입니다.

사건을 맡았던 서울 영등포경찰서에서 들은 사연은 이렇습니다.

배 씨가 팬택의 AS센터를 방문한 것은 4월. 휴대전화를 구입한 지 1주일 만에 자주 통화가 끊기고 음질도 좋지 않았답니다.

그러나 AS센터 직원들은 바쁜 그를 코앞에 앉혀 놓고 자기들끼리 한가하게 농담을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한참 동안 시간을 끌더니 “이어폰에 문제가 있다”며 이어폰만 바꿔줬습니다. 하지만 휴대전화는 계속 말썽을 부렸답니다. 배 씨는 흉기를 든 채 오토바이를 타고 박 부회장을 미행해 “죽이겠다”고 했고, 휴대전화 2대(90만 원 상당)와 300만 원도 받아냈습니다.

이 해프닝은 스릴러 영화처럼 극단적이긴 합니다. 또 이미 전과가 있는 ‘상습 협박범’인 배 씨를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AS센터 직원들이 성심껏 응대하기만 했어도 화를 풀었을 것”이라는 그의 경찰 진술은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팬택이 지난해 선보인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폰인 ‘IMB-1000’도 고장이 잦아 소비자들의 원성을 듣다가 올해부터 생산이 중단됐습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었다”고만 밝혔을 뿐, 소비자에 대한 정중한 사과나 리콜은 없었습니다.

팬택은 최근 ‘머스트 해브(MUST HAVE·가져야 하는 것)’라는 새로운 브랜드 슬로건을 만들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려 합니다. 정작 이 회사가 ‘가져야 하는 것’은 화려한 슬로건이 아니라 ‘소비자가 왕’이라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아닐까요.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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